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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 리포트) 강남 재건축과의 `치킨게임`

윤진섭 기자I 2005.04.28 19:32:21
[edaily 윤진섭기자] 정부가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전방위 압박을 연일 계속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시장도 숨을 죽이면서, 정부 정책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선 `소나기만 피하자` 내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식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산업부 윤진섭 기자는 정부의 공세적인 부동산 정책과 시장의 모습에서 `치킨게임`이 연상된다고 합니다. `치킨게임` 흔히 `끝장승부` 를 뜻하는 말입니다. 도로 양 끝에서 자동차가 출발해 충돌 직전 어느 한쪽이 피하면 겁쟁이(치킨)라고 비아냥을 퍼부은 데서 유래했습니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도 이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소나기식 대책을 연일 쏟아내는 정부. 반면 이를 비웃듯 청개구리 뜀박질을 거듭해 온 강남 아파트 값은 흡사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갈 때까지 가보자"는 치킨게임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이렇게 정부와 부동산 시장이 "끝장승부"를 펼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수십 년 동안 묵시적으로 자리잡고 있던 틀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과거 부동산 시장에는 `선수들`간에 "아파트 만큼 정부의 입김이 강한 것도 없다. 정부 의지를 거슬러서는 돈 벌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마라"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시장은 달라졌습니다. "정부 정책과 엇박자 투자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 규제를 강화하면 적당히 반발하면서 버티고, 세금을 올리면 그만큼 웃돈을 붙여 팔면 된다." 이런 황당무개(?)한 내용이 수요자나 투자자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한 데는 정부정책과 그 후 아파트 값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최근 정부는 재건축 시장에 대해 개발이익환수제도를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정부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빈틈이 생긴 것입니다. 바로 용적률 30%가 늘어나는 단지에 대해선 예외를 두겠다고 하자, 여의도와 강남 압구정동 일대 일부 용적률이 크게 늘지 않는 재건축 아파트 값이 큰 폭으로 뛴 것입니다. 건교부는 부랴부랴 용적률 1%가 늘어나는 재건축 단지도 임대아파트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등 진화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단지에서 밀려난 투자자금은 개발이익환수제 적용을 받지 않는 잠실 저밀도 재건축 단지로 몰리고 말았습니다. 실례로 잠실주공 1단지는 올해 들어서만 전 평형에 걸쳐 1억원 이상 가격이 뛰는 반사이익 효과를 얻었습니다. 정부는 가격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시장은 엇박자로 흘렀고, 시중 부동산 투자자금의 흐름은 규제지역→틈새→자금이동에 충실함을 단적으로 보여준 경우입니다. 여하튼 정부는 최근 들어 각종 부동산대책을 쏟아내면서 시장과 펼치는 치킨게임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를 여러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는 도곡 주공 2차의 분양승인을 보류한 데 이어 재건축 단지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경제부처의 수장인 재정경제부는 해제 3개월만에 광명시를 주택투기지역으로 다시 묶었고,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는 각각 건설업체 세무조사와 담합조사를 실시하겠다며 부동산 잡기 정책에 가세했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정부의 정책의지를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일 노무현 대통령은 임대주택개편방안 국정회의에서 "주택시장에서 생기는 모든 (투기적) 이익은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는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했습니다. 그간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부동산 관련 발언중 가장 강도높은 얘기였습니다. 여기에 행자부 소속의 경찰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를 중심으로 재건축 사업에 대한 위법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 마디로 정부 내 핵심 조직이 부동산 값, 특히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을 잡기 위해 `올 코트 프레싱`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건교부에 출입하고 있는 기자들 사이에선 "이제 국방부만 나서면 정부 내 핵심 조직은 부동산에 올인 하는 셈"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돌곤 했습니다. 이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국방부마저도 28일 `서울공항 이전계획 없다`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 분위기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결국 건교부 기자들은 각 부처가 쏟아내는 부동산 안정대책을 챙기느라 때론 경찰기자로, 때론 국세청 기자로, 재정경제부 기자로, 그리고 오늘은 국방부기자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일단 이번 조치로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들은 단기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업자도, 주민도, 건설업자도 서슬 퍼런 정부의 정책에 맞서기 보다는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할 테니까요. 그러나 이에 한 발 앞서 초강수 대책을 바라보는 현장 중개업자들은 "시장을 모른다" 내지는 "서민들만 날벼락을 맞을 것"이라며 정부가 장고를 거듭한 끝에 악수(?)를 뒀다는 극단적인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잠실의 모 중개업자는 "공급이 태부족한 상황에서 수요가 몰리고 있으니, 아무리 대책을 내놔도 속수무책"이라며 "일부에선 대책이 나와야 강남 아파트의 희소가치가 높아지고, 그래서 집값이 뛴다면 은근히 규제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또 다른 중개업자는 "건교부 주택국장이 라디오에서 `수도권에 신도시를 짓고 있으니, 신도시만 지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말을 들었다"라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과연 고양삼송이나 양주 같은 곳에 갈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시장 상황과 동떨어진 이야기냐"라고 반문했습니다. 주택정책의 총괄자로서 정부가 시장을 규제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정부의 모든 기관이 총 동원돼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식의 `갈 때 가지 가보자"는 자세는 그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역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단기 가격 안정에만 온갖 촉각을 곤두세우는 정부의 모습은 혹여 빈대도 못잡고 초가 삼간만 태우는 격이란 우려를 낳기에 충분합니다. 규제만 믿고 단기 가격안정을 꾀하는 꿈은 이제 깨야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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