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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457개 넓이 휩쓴 화마…재난 컨트럴타워 부재 '되풀이'

박진환 기자I 2017.05.09 17:50:20

6~9일 산불로 산림 340㏊·주택 37채 피해..이재민78명
헬기 175대, 지상인력 3만 8000여명 투입해 나흘간 사투
입산자 실화에 소각 등 사소한 부주의가 대형산불 이어져
국가재난컨트롤타워 부재 이번에도 되풀이..개선안 시급
"산불진화용 헬기·인력 보강하고 관련 법·제도 정비해야"

8일 오후 강원 삼척 도계읍 인근에서 군 장병들이 잔불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지난 6일부터 나흘간 강원 삼척과 강릉 등지에서 산림 340㏊(추정치)를 잿더미로 만든 산불이 마침내 모두 진화됐다. 산림청은 9일 오전 11시 20분을 기해 강원 삼척과 강릉, 경북 상주 등에서 발생한 3건의 산불진화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산림당국은 나흘동안 헬기 175대와 지상인력 3만 8000여명을 투입, 악전고투 끝에 화마를 잡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산림청 소속 KA-32(카모프) 헬기 1대가 비상착륙해 정비사 조모(47)씨가 숨졌고, 산불진화대원 엄모(53) 씨가 고사목(枯死木)에 맞아 어깨를 다치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잇달았다.

◇ 건조한 날씨·침엽수림·강풍에 피해 확산

황금연휴 막바지인 지난 6일 오전 11시 42분경 입산자 실화로 추정되는 산불이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 인근에서 발생했다. 이 산불은 계속된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을 타고 나흘간 산림 270㏊를 태웠다. 같은날 오후 2시 10분경 경북 상주시 사벌면 덕가리 인근 야산에서는 자신의 밭에서 농산폐기물을 소각하던 김모 씨에 의해 산불이 발생해 13㏊의 산림을 태운 뒤 사흘 만인 8일 오후 4시 33분경 진화됐다.

같은날 오후 3시 32분경에는 강원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인근에서 입산자 실화에 의한 산불이 발생해 나흘간 산림 57㏊를 잿더미로 만든 뒤 9일 오전 6시 34분경 꺼졌다.

산림당국은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강원 삼척과 강릉, 경북 상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진화헬기 175대와 지상인력 3만 8000여명을 투입해 발화 72시간여 만에 모두 진화하는데 성공했다.

한때 진화 종료를 선언했던 강릉 산불은 강풍에 다시 불씨가 되살아났고, 삼척 산불은 험한 산세와 깊은 계곡이 많아 헬기는 물론 지상인력 투입도 난관에 부딪히면서 진화에 어려움이 가중됐다. 봄철마다 강원도 동해안 일원에서 발생하는 거센 바람인 ‘양강지풍(襄江之風)’으로 피해가 커졌다.

양강지풍은 양양과 강릉 사이에서 부는 초속 20~30m의 강한 국지적 바람으로 대형 산불의 주요 원인으로 손꼽힌다.

또한 비가 없는 건조한 날씨가 계속됐고, 인화력이 강한 소나무 등 침엽수가 많은 지역적 특성도 산불 진화를 어렵게하는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번 산불로 산림 피해는 삼척 270㏊, 강릉 57㏊, 상주 13㏊ 등 모두 340㏊로 앞으로 정밀조사를 통해 피해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피해 규모는 2013년 3월 울산 울주에서 발생, 280㏊의 산림을 태운 산불 이후 4년 만의 대형 산불로 축구장 면적의 457배이자 여의도 면적(290ha)의 1.2배에 달하는 수치다.

역대 대형 산불을 보면 2000년 4월 강원 고성과 강릉, 동해, 삼척 등을 휩쓸며 산림 2만여㏊를 잿더미로 만든 동해안 산불이 사상 최악의 산불로 남아있다.1996년 4월 산림 3762㏊를 태운 강원 고성 산불과 2002년 4월 충남 청양 산불(3095㏊) 등이 뒤를 이었다.

또한 2005년 4월 초속 32m의 양강지풍을 타고 천년고찰 낙산사를 태운 강원 양양 산불도 많은 문화재와 함께 산림 1000여㏊를 사라지게 했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삼척과 강릉 등 산불 발생 지역에 감시 인력과 헬기 등을 배치해 혹시 모를 재발화 등에 대비하고 있다”면서 “경북 상주에서 불을 낸 혐의로 김모 씨를 붙잡아 조사하는 한편 강릉과 삼척에서도 철저한 조사를 통해 가해자를 반드시 검거해 처벌하겠다”고 밀헸다.

◇국가재난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 이번 산불에서도 되풀이

이번 연휴 기간 중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산불을 통해 세월호 사고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혈세 100여억원을 투입해 새롭게 구축한 ‘산림재해통합정보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하는가 하면 주민들 대피를 위한 긴급 재난문자가 제때 발송되지 못하는 등 정부의 재난안전시스템은 여전히 구멍 투성이다.

우선 정부가 2013년부터 총사업비 100여억원을 투입·구축해 지난 3월부터 본 가동에 들어간 ‘산림재해통합정보시스템’이 이번 산불 과정에서 정상 가동되지 못했다. 강원 강릉과 삼척 등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이 확산하면서 인근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는 상황 속에서도 재난포털사이트와 각 기관에는 산불 발생 현황이 ‘0건’으로 표시되는 등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다.

또한 전국에 산재한 산불 진화용 헬기를 대형 산불 등 국가적 재난 발생 시 산림청이 개별 기관에 일일히 협조 요청을 보내야 하는 현 시스템도 개선돼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현재 전국의 산불 진화용 헬기는 모두 138대이며, 이 중 물 탱크가 있어 직접 진화가 가능한 헬기는 91대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산림청이 직적 보유한 헬기 45대를 제외한 나머지 헬기는 각 지방자치단체와 소방방재청, 군(軍) 등으로 이관돼 있어 이번 산불과 같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을 효율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산림청 등 특정기관이 강제 동원해 일괄 운용할 수 있는 법·제도적 정비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도환 산림청 산불방지과장은 “이번 산불과 같이 동시다발적으로 규모가 큰 산불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직접 진화가 가능한 헬기를 늘려야 하고, 지상인력도 전문성과 특수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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