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통화 시 녹음 전 상대방 통지 강제해야 할까?”

김현아 기자I 2017.08.14 11:37:13

최순실 씨 형사 재판 등에서 증거(녹취록)로 활용
김광림(자유한국당) 의원, '쌍방동의법' 발의
진보넷, 약자의 고발 권리 제한 우려
장병완(국민의당)의원은 몰카근절법 발의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최순실 씨 형사재판에서 휴대폰의 ‘통화 중 녹음기능(녹음파일)’을 활용한 녹취록이 증거로 채택되면서, ‘통화 중 녹음’ 기능을 두고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신뢰 기반을 유지하려면 스마트폰 카메라를 쓸 때 촬영 소리를 내도록 한 것처럼, ‘통화 중 녹음’이 이뤄지기 전에 상대에게 그런 사실이 통지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대로 ‘통화 중 녹음’을 하려 할 때 상대에게 통지하도록 의무화하면 비리 노출을 원천 봉쇄하고 약자의 고발 무기를 빼앗는 셈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 논란은 지난달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이 ‘통화 중 녹음’을 규제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더 뜨거워지고 있다.

▲kt cs의 스팸차단 앱 후후의 ‘통화중 녹음기능’과 SK텔레콤 T전화의 ‘자동녹음 업데이트’ 화면
◇국내는 불법 아냐..스마트폰에 기능 내장·별도 앱도 출시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당사자(나)와 상대 통화자간의 대화를 내가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메릴랜드·코네티컷 등 미국 12개 주에선 쌍방의 동의가 없는 대화 녹음은 불법이다.

때문에 삼성과 LG 같은 휴대폰 회사들은 북미와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 수출할 때에는 ‘통화중 녹음’기능을 뺀 채 수출한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 몇 개 국가에 파는 물량에만 ‘통화 중 녹음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반면 애플 아이폰이나 캐나다 블랙베리 등은 통화 중 녹음 기능 자체가 없다.

아이폰 마니아들은 보이스레코더를 사서 통화 녹음이 필요할 때 스피커폰으로 녹음하거나, 스피커로 해두고 아이패드로 녹음하거나, ‘탈옥’하는 등의 방법을 쓰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후후’나 ‘T전화’ 같은 통신 서비스 앱이 인기를 끌면서 더 손쉽게 수월하게 통화 중 녹음 기능을 지원하는 통화메모 기능까지 추가됐다.

통화메모 기능은 통화를 녹음한 뒤 녹음파일을 문자처럼 통화이력과 함께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다. 업무 상, 혹은 개인적인 용무로 사실확인이 꼭 필요한 통화를 하는 이용자들이 간편하게 과거 통화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통화 중 녹음’이 카카오톡 문자처럼 ‘업무 메모’의 성격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이 정호성(47) 전 비서관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통화녹음 파일 236개 중 4개(12분24초)는 정 전 비서관과 대통령간 대화였다. 그는 ‘통화 중 녹음’ 기능을 박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업무 지시를 기록하는 역할로 활용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12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최순실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자유한국당 ‘상대방 통지의무화법’ 발의 VS (사)오픈넷 , 사회 부조리 고발 축소 우려

지난 7월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10명은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면서 그 내용을 녹음하려면, 상대에게 그런 사실이 통지되도록 강제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통화중 몰래 녹음규제법’ 발의한 김광림 의원(자유한국당)과 ‘몰래카메라 규제법’ 발의한 장병완 의원(국민의당)
김 의원은 ▲외국에서도 쌍방 동의를 전제로 ‘통화 중 녹음’을 허용하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쓸 때에도 사생활 노출 우려때문에 촬영 소리를 내도록 했다는 점을 들어 개인간 통화라도 상대에게 통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녹음 기능을 활용한 녹취록이 각종 재판의 증거로 채택되고 있으니, 법정에서 엄격한 효력을 가지려면 쌍방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사)오픈넷은 이런 규제는 당사자의 녹음할 권리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50개 주중에서 대화 당사자 모두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주는 12개에 지나지 않고 ▲해외에서도 스마트폰의 촬영 소리를 의무화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사회 부조리를 밝히고 범죄를 드러내는 과정, 특히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 그리고 약자가 강자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에 근본적인 장애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적용되고 있는 ‘휴대폰 촬영음 규제’는 법적규제가 아니다.

제조사들이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의 민간 표준에 따라 2004년 7월 1일부터 몰카 촬영을 막기 위해 휴대폰으로 카메라 촬영 시 반드시 60dBA∼68dBA의 촬영음을 내도록 했다.

법적 규제가 아닌 때문인지, 최근 촬영음 규제를 무력화하는 무음앱이나 몰래카메라들이 보급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카메라 촬영음 규제가 없다.

때문에 국민의당 장병완 의원은 최근 몰래카메라의 제조·수입·유통에 이르는 전 단계를 정부가 사전 통제하는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 일명 ‘몰카 근절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통화 중 몰래 녹음’과 ‘몰래 카메라’에 대한 격렬한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 합의에 이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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