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5달러짜리 원피스를 앞세워 세계 패스트패션 시장을 뒤흔든 쉬인(SHEIN)의 몸값이 4년 만에 100조원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코로나19 당시 쉬인은 온라인에서 유행을 실시간으로 읽어 중국 공장에서 빠르게 옷을 만들어내는 ‘패션계의 기술기업’으로 평가받았다. 2022년 투자유치 당시 기업가치는 982억달러(약 140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정작 증시 입성을 앞두자 투자자들의 평가는 달라졌다. 미국과 유럽이 쉬인의 초저가 판매를 뒷받침했던 소액 수입품 면세 혜택을 잇따라 없앤 데다 매출 성장세도 빠르게 둔화했기 때문이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는 7월 10일 쉬인의 홍콩 IPO을 승인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현재 논의되는 목표 기업가치는 약 300억~400억달러(한화 42~56조원)로, 2022년 시리즈D 투자 당시 인정받았던 982억달러(140조원)에서 약 69% 낮아진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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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달러 원피스' 만든 알고리즘·中 공급망·면세
성장 방식도 기존 패션기업과 달랐다. 자라와 H&M 등 기존 패션 브랜드들이 계절별 수요를 예상해 대량으로 제품을 생산했다면 쉬인은 온라인 검색과 구매 데이터를 분석해 유행 가능성이 높은 제품을 소량 생산한 뒤 실제 반응에 따라 추가 주문을 넣었다. 잘 팔리지 않는 상품은 생산을 중단하고 반응이 좋은 상품만 빠르게 추가 생산해 재고 부담을 낮췄다.
이런 소량 생산 방식을 뒷받침한 것은 중국의 의류 공급망이다. 광저우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의류 산업 생태계에는 원단과 부자재 업체, 봉제공장이 밀집해 있어 수백 벌 단위의 작은 주문도 빠르게 생산할 수 있었다. 쉬인은 여기에 자체 시스템을 연결해 주문량과 재고, 판매 데이터를 공급업체와 공유했다.
쉬인의 가격 경쟁력을 더한 것은 미국의 면세 제도였다. 미국은 800달러(약 114만원) 이하 해외 직구 상품에 관세를 면제하는 '디 미니미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미국 소비자들은 중국에서 만든 쉬인 옷을 더욱 낮은 가격에 살 수 있었다. 값싼 생산비와 낮은 재고 부담, 무관세 직배송이 맞물리며 몇 달러짜리 옷을 전 세계에 쏟아낸 것이다.
특혜 사라지자 성장 둔화…높아진 몸값 부담으로
쉬인의 성장 공식에 변화가 생긴 것은 주요 시장이 면세 혜택을 거둬들이면서다. 미국은 지난해 5월 중국과 홍콩에서 들어오는 800달러(약 114만원) 이하 소액 수입품에 대한 면세를 폐지했다. 유럽연합(EU)도 올해 7월부터 150유로 이하 역외 전자상거래 상품에 적용했던 관세 면제를 없애고 임시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쉬인은 관세와 통관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면 초저가라는 강점이 약해지고, 가격을 유지하려 비용을 직접 부담하면 수익성이 떨어지는 선택지에 놓였다. 과거 쉬인의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사업 환경 자체가 달라진 셈이다.
실적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실제 올해 1분기 쉬인의 미국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4.3% 줄었고 9900만달러(약 1400억원)의 순손실도 냈다. 매출 증가율은 2024년 20.7%에서 지난해 8.0%로 낮아졌고, 올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하는데 그쳤다. 여전히 매출은 늘고 있지만 과거 높은 몸값을 뒷받침했던 성장 속도는 사라진 셈이다.
몸값을 지탱해주던 실적이 흔들리면서 상장을 앞둔 쉬인은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다. 코로나 이후 높은 가격에 투자한 주주들의 투자 단가가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는 기업가치보다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투자자 보호조항에 발목 잡힌 IPO..진퇴양난에 빠진 쉬인
쉬인은 2022년 982억달러(약 140조원)의 기업가치로 18억달러(약 2조6000억원)를 조달했다. 이듬해에는 몸값을 640억달러(약 91조원)로 낮춰 17억달러(약 2조4000억원)를 추가로 유치했다. 홍산(옛 세쿼이아차이나)과 제너럴애틀랜틱(GA), 코튜매니지먼트 등이 이 시기 투자에 참여했다.
당시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 상장을 염두에 두고 높은 가격에 지분을 샀다. 그러나 뉴욕 상장이 무산된 뒤 런던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다시 홍콩으로 상장지를 옮기는 사이 회수 시점은 수년 밀렸다. 그 사이 쉬인의 몸값도 140억에서 현재의 40억원대 수준까지 내려왔다.
쉬인이 진퇴양난에 빠진 것은 세콰이어를 포함해 높은 가격에 들어온 이들 후기 투자자에게 상장 지연과 가격 하락에 대비한 보호장치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쉬인은 상장이 미뤄진 기간에 대해 약 8%수준의 수익률을 지급하기로 했고, 지금까지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해야 할 현금은 약 11억달러(약 1조6000억원)까지 불어났다. IPO가 더 늦어질수록 보상 부담도 더욱 커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시장 눈높이에 맞춰 몸값을 낮추기도 부담스럽다. 공모가가 기존 투자단가보다 낮으면 일부 투자자에게 현금이나 주식을 추가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2023년 D+ 투자자인 홍산과 GA에는 공모가가 투자단가를 밑돌 경우 더 많은 주식을 받을 수 있는 가격보호 조항이 적용돼 있다. 쉬인은 지난 3월 이와 비슷한 보호를 2022년 D와 프리D 투자자에게도 확대했다.
쉬인에게 이번 홍콩 IPO는 자금 조달보다 과거 투자자들과 맺은 조건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더 큰 과제가 됐다. 상장을 늦추면 보상금이 늘고, 가격을 낮추면 기존 투자자에게 추가 보상을 해야 한다. 4년 전 쉬인을 140조짜리 기업으로 만들었던 비상장 시장의 가격표가 이제 홍콩 IPO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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