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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고개 숙인 이윤택 "피해자·연극계 모두에 사죄"(종합)

장병호 기자I 2018.02.19 14:29:15

연이은 성범죄 논란에 19일 공식 사과
"18년간 관습적으로 행한 나쁜 행태" 시인
성폭행 의혹은 부인 "합의에 의한 것"
문화예술계 고질적인 병폐 드러나

성범죄 논란에 휩싸인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범죄 혐의와 관련해 공개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shdmf@).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정말 부끄럽고 참담하다. 저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며 제 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포함해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며 ‘연극계 대부’로 불려온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연이은 성범죄 논란으로 끝내 고개를 숙였다. 이윤택 연출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4일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의 폭로로 불거진 성범죄 논란에 공식 사과했다.

이윤택 연출은 이날 예고했던 오전 10시 정각 다소 수척한 표정으로 혼자 무대에 올랐다. 취재진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피해자와 연극계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는 “피해 당사자들과 연희단거리패 출신 배우 및 단원들, 연극계 선후배에게 사죄한다”며 “저 때문에 연극계 전체가 매도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성폭행 의혹 제기엔 한숨

이날 기자회견이 열린 30스튜디오는 연희단거리패가 게릴라극장에 이어 지난 2016년 말 새롭게 터전을 마련한 소극장이다. 이윤택 연출은 지난해 9월 이곳에서 연극 ‘노숙의 시’를 올리며 시대정신과 연극에 대한 날카로운 혜안을 털어놨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취재진 질문이 이어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잘못이 아닌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성폭행 의혹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윤택 연출의 성범죄 논란은 크게 성추행과 성폭행 두 가지로 제기되고 있다. 전자는 김수희 대표가 폭로한 성기 주변 부위의 안마를 비롯해 발성 연습을 빌미로 한 부적절한 신체 접촉 등이다. 이윤택 연출은 이에 대해 “극단 내에서 18년 가까이 관습적으로 진행된 나쁜 행태였다”며 “때로는 죄인지 모르고 저지르기도 했고 때로는 죄의식을 가지면서도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김수희 대표의 폭로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 ‘윤택한 패거리를 회상하며’를 통해 제기된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이윤택 연출은 “합의를 통한 성관계는 있었지만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성폭행을 하지는 않았다”며 “성폭행과 관련한 문제는 법적 절차에 다라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성범죄가 연희단거리패 내부에저 조직적으로 벌어졌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제 잘못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윤택 연출은 “단원들도 수차례 나에게 항의를 하고 문제제기를 했고 나 역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다”며 “제 자신을 다스리지 못해 이런 악순환이 오랫동안 계속됐다”고 해명했다.

성범죄 논란에 휩싸인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범죄 혐의와 관련해 공개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shdmf@).


◇예술 이유로 성범죄 묵인…고질적 병폐 드러나

이윤택 연출은 더 이상 연극 활동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30스튜디오는 처분할 계획”이라며 “밀양연극촌과 밀양여름축제는 밀양시에서 빨리 저와 연희단거리패를 배제한 상태에서 운영자와 축제 진행자를 조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희단거리패도 극단 내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해체를 결정했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단원들과 사흘 간 논의한 끝에 더 이상 어떤 방법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모았다”며 “오늘부로 연희단거리패를 해체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과 따로 만난 김소희 대표는 “이윤택 연출의 잘못된 부분만 고친다면 이상적인 연극의 세계를 단원들은 물론 관객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 역시 이윤택 연출의 안마를 했지만 부당한 요구가 있을 때는 이를 거절했다”며 “나중에서야 다른 후배들은 나처럼 거절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번 논란은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성범죄까지 묵인해온 문화예술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드러난 사례다. 이윤택 연출에 대한 폭로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연극계의 또 다른 성추행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최근에는 또 다른 원로 연출가의 성추행 의혹이 제기돼 연극계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연극인들은 이윤택 연출의 사과에 진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현장을 지켜본 연극배우 홍예원은 “피해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공개 사과를 하는 방식 자체가 2차 가해”라고 말했다. 설유진 극단 907 대표는 “성폭행이 아닌 합의 하의 성관계라는 주장은 본인의 권력과 영향력을 충분히 활용해온 수십 년의 세월을 반증한다”고 지적했다.

박상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아직 이윤택 연출이 진심으로 뉘우친 것 같지 않다”며 “폭로한 후배들에게 위로와 경의를 표한다. 블랙리스트 이상으로 예술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단체들의 항의도 이어졌다. 한국극작가협회가 지난 17일 이윤택 연출을 제명한데 이어 한국여성연극협회가 18일 공식입장을 내고 이윤택 연출에 대한 사법처리를 요구했다. 서울연극협회와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도 19일 이윤택 연출과 연희단거리패의 제명 및 퇴출을 결정했다.

성범죄 논란에 휩싸인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범죄 혐의와 관련해 공개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shd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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