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어이쿠, 냄새야!” 담배 꼬나문 모습이 폼 나던 시절은 지났다.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됐다. 인근의 커피숍이나 점심시간 식당을 들어설 때도 흡연구역을 먼저 찾는 게 익숙해졌다. 요즘처럼 장대비가 내릴 때면 우산 쓰고 구부정하게 담배 피는 빌딩 앞 흡연자들 역시 이제 구경거리도 아니다. 가끔 임원과 신입사원이 함께 맞담배를 피는 생경한 풍경도 연출된다.
점점 애연가의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큰 건물에서만 담배를 안 피우면 됐지만 앞으로는 서울시내 공원 및 버스정류장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된다. 서울시는 오는 9월부터 서울시가 관리하고 있는 23개소 공원에, 12월부터는 중앙차로 버스정류장 295개소를 금연구역으로 확대 지정하고 위반자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계획이다.
애연가 김씨, 안녕하십니까?
서울시는 지난달부터 청계광장, 서울광장, 광화문광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고 과태료도 10만원으로 높였다. 그런가 하면 금연여부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코오롱은 지난 5월부터 금연펀드를 만들었다. 20만원을 내고 금연펀드에 가입하면 오는 10월까지 금연에 성공할 경우 100만원을 탈 수 있다. 무려 5배의 수익이 남는다.
이랜드는 아예 금연 조건부 채용에 나섰다. 현재 담배를 피우는 직원은 ‘즉시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을 해야 한다. 당장 올 하반기부터 이랜드에 입사하려면 금연서약을 해야 한다. 만약 금연서약서 제출을 거부하면 전형에서 떨어진다.
대기업이나 고층 빌딩의 경우 층마다 흡연실을 두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흡연실을 없애거나 축소하는 곳도 많아졌다. SK그룹은 종로구 서린동 사옥내 층별 흡연실을 없애고 금연빌딩으로 운영키로 했다. 직원들은 21층에 위치한 흡연실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이렇다보니 흡연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1층 현관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운다. 당연히 업무 연속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직장인 김모(38) 씨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오가는 데 10분은 걸린다”며 “업무 손실은 물론 엘리베이터 이용이 잦아지면서 경제적 손실도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금연을 강조하다보니 애연가들의 애환도 많다. 화장실, 복도 등에 숨어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 직장인의 입에서는 담배연기가 아니라 한숨이 뿜어져 나온다.
가치담배도 다시 등장했다. 종로, 여의도 등 직장인 밀집 지역 가판대에서 볼 수 있다. 한 개비에 200원. 약 2배 가격에 팔고 있는 셈이다.
여의도역 5번출구 앞 담배가판대 상인은 “금연 중인 직장인들이 흡연 욕구가 생길 때 낱개 담배를 구입하고 있다”며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찾는 사람이 종종 있어 준비해둔다”고 말했다.
반면 금연정책이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국민건강증진법에는 연면적 1000㎡가 넘는 건물과 어린이집, 그리고 학원 건물 등은 금연시설로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처벌규정은 명확하지 않다. 처벌 단속 기관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별도의 경범죄를 적용해 범칙금 2~3만원을 물도록 하고 있다. 그마저도 위반자 특정이 가능해야 하고 본인이 부인할 경우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있어야 한다.
흡연과 관련된 민원도 늘고 있다. 서울시 복지건강본부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특히 길거리 담배 민원이 늘었다”며 “해당 기업 빌딩에는 흡연구역 설치 등의 협조요청을 하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금연을 강조하면서 흡연자의 권리가 너무 안이하게 처리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흡연자들의 의식 수준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처벌 규정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흡연구역 설치 등 흡연자의 권리도 함께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