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기성 오상용기자] 정부가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산업적 측면을 고려한 구조조정`은 무엇일까.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그동안의 구조조정이 개별기업에 치우친 측면이 있었다"며 산업경쟁력 보완 차원의 구조조정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궁금증이 더 커지고 있다.
이같은 발언은 `기업구조조정은 채권단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방점을 찍었던 종전 입장에서 한걸음 더 나간 것이다. 앞으로는 기업구조조정에 있어 정부의 의지를 더 반영시켜 나가겠다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정부 주도의 전격적인 구조조정을 생각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기업 부실의 옥석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과감하게 나서기는 어렵다는 입장은 유지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기업구조조정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법 및 제도 개선을 뒷받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구조조정기업이 부동산을 매각할 때 양도소득세 과세를 이연하거나 감면해주는 세제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정부는 기업부실이 확연히 드러날 가능성이 높은 1분기 이후에 가서는 구조조정을 주도해 나갈 준비도 하고 있다. 조선과 건설 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산업구조조정도 병행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앞뒤 안가리는 무분별한 구조조정으로 위기극복 후 산업경쟁력을 잃어버리는 외환위기 때와 같은 잘못을 범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위기극복 뒤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내기업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생산능력을 보유하도록 하는 게 산업구조조정의 최우선 목표다. 정부의 구조조정방안은 `한계기업 퇴출` 보다는 `흑자도산 방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내일 청와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정부의 전반적인 구조조정 방향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 `IMF 때와는 다르다`.."옥석 구별 아직 안됐다"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 IMF 외환위기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IMF가 강제한 고금리 정책 등으로 인해 한계기업들이 일순간에 드러나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 부실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 `옥석` 구별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채권금융기관을 제쳐놓고 `구획`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은 아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구조조정은 사전적일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외환위기 당시에는 대기업의 문제라 부실 처리가 비교적 간단한 도식을 통해 가능했지만 지금의 문제는 대기업이 아닌 수많은 중소기업들에 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따라서 외환위기 당시의 `빅딜`과 같은 방식의 전격적인 산업구조조정은 정부로선 생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정부는 혹독한 경제한파가 지난 1~2년 뒤 제몫을 할 기업인데, 일시적인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해 도산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막고 있다. 정부가 신·기보를 통해 중소기업 보증을 대폭 확대하고, 은행권의 올해 중소기업 대출에 대해 만기 연장을 도출해 낸 배경은 여기에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 처럼 은행이 대출을 극도로 꺼리는 상황에선 `옥`이 될 수 있는 기업이 `석`으로 추락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며 "이렇게 되면 은행이 멀쩡한 기업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만드는 구조가 되는 것인데, 이같은 부작용을 막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위기 후를 대비하는 전략적 구조조정
이같은 측면에서 `2009년판 기업 구조조정`에는 위기 후를 내다보는 전략적 판단이 병행돼야 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윤 장관이 "상시적 구조조정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법과 제도를 보완하되,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정책적 측면이 반영될 수 있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기업의 퇴출 여부는 채권은행들의 몫이지만 이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재무제표 뿐만 아니라 정부의 산업정책적 요소도 고려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대외 악재에 의한 금융위기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나빠진 재무제표만을 근거로 구조조정에 나서기에는 채권단도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가 생각하는 산업정책 방향과 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책을 감안하는 종합적인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투자자가 종목 선택에 참고할 수 있도록 증권사들이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내놓는 것 처럼 정부도 채권단이 기업 구조조정 작업에 참고할 수 있는 산업정책 방향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발표했던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확대 방침에서 정부가 구상하는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정부가 보증비율을 95%에서 100%로 확대하고 보증한도를 100억원으로 늘린 대상은 수출기업과 녹색성장기업, 우수기술기업, 창업기업 등 일부 중소기업이었다.
이 관계자는 "한계 기업은 철저히 시장에서 퇴출시켜 자금배분의 효율성을 높이되 생존 가능한 기업에 대해서는 충분한 자금을 지원할 것"이라며 "필수적인 산업기반을 보호해 위기 후 도약과정에서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구조조정펀드로 M&A 활성화..세제지원
구조조정은 크게 보면 재화의 재분배다. 공장과 인력 자본 등이 헤쳐 모이는 과정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과 일자리 감소를 줄이면서 기업들의 체질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 기업간 인수합병(M&A)이다.
이날 위기관리 대책회의에서 윤 장관도 "M&A 등 시장 자체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병행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하고 추경 반영도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구조조정펀드는 M&A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재원 조성을 위해 정부의 추가적인 출연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추경에 반영될 전망이다.
아울러 정부는 인수합병에 따른 취득세와 한시적으로 경감해주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인수합병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 기준도 탄력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앞서 원활한 구조조정을 측면 지원하기 위해 워크아웃 기업이 자구노력 일환으로 비사업용 토지를 매각할 경우는 양도세 중과대상에서 제외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기업구조조정 촉진과 M&A 활성화를 위한 세제 지원과 함께 통합도산법 개정을 위한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구조조정 관련제도도 손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