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병수기자] 은행권에서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그야말로 뉴스메이커입니다. 김 행장은 스스로를 "뱅커"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장사꾼"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 덕분에 은행권에서도 "장사꾼론"이 좀 힘을 얻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12일 김 행장은 서울시립대에서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김 행장 스스로 얘기한 "성공담"을 김병수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 "김우중이 세상은 넓다고 했지만…"
김 행장은 익히 알려진 얘기지만 이날 옛 주택은행장 취임 초기의 대우그룹 익스포져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우중씨와 자신은 반비례한다"고 운을 뗏습니다. 자신은 증권사 사장시절부터 김우중을 믿지 않았다는 말도 했습니다.
김우중씨를 왜 믿지 않았는지는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런 얘기는 하더군요. 대우 자금을 회수하라고 지시를 했는데, 담당 상무와 부장이 10~20% 정도밖에 회수하지 않아 불러 따졌더니, "설마 대기업이 망하겠느냐. 은행에서 보통 자금 회수하라고 하면 10~20% 정도 회수한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회수하라는 건 100%다. 나도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 못하겠으면 사표쓰라"고 했다는 겁니다. 결국 대우 부도가 터졌을 때 3000억원밖에 안물렸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행장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My Way"라고….
김 행장은 이 때 (판단이) 틀렸으면 골치아팠을 거라고 회상했습니다. 대우가 계속 살았으면 회사로부터 욕먹고, 은행원들로부터도 뭣도 모르는 것이 은행 다 망친다는 소릴 할 게 뻔하니까요. 그는 당시의 경영판단을 다소 운이 작용한 것으로 말했지만, 여하튼 배짱치고는 대단한 배짱입니다.
◈ "이도저도 아니면 공무원해라"
그러나 요행만으로는 될 수 없죠. 김 행장은 이쯤에서 평소의 "공무원에 대한 시각"을 거침없이 토해냈습니다. "공직자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분야는 공무원이 몰라야 하는데, 알려고 해서 더 문제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80년대 중반이후 민간 부문이 엄청나게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달았습니다. "반도체에 대해 누가 더 많이 알겠는가. 네덜란드에 우체국이 없는 데 아무 문제 없더라"는 식의 비유가 이어졌습니다.
김 행장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미래가 어디로 가는지 보라"고 했습니다. 학부생들을 위한 강연인만큼 준비된 멘트도 멋있네요.(^_^) 다음 말은 더 걸작이지만…. 김 행장은 "아무 것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고시 공부나 하라"고 하더군요.
이런 얘길 우리의 점잖은(?) 공무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김 행장의 입담과 독설도 손가락 안에 드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김 행장의 얘기를 곱씹어 보면 내용은 간단합니다. "김우중씨 말대로 세상은 넓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런만큼 각 분야에서 (더 의미있게) 할 일도 많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그는 이 부문에서 재미있는 비유를 했습니다. 삼국지 얘깁니다만, "흘러가는 강물에 몸이 들어있으면 강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강 밖으로 나갈려면 더 멀리보기 위해 목을 내놓아야 하고, 목을 내놓기 위해선 (마치 오리처럼) 발을 열심히 굴러야지요.
좀 더 노력해서 목을 내놓고 보면 길이 보인다는 겁니다. 목을 좀 더 많이 내놓을수록 길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거지요. 대세를 보면서 좀 더 멀리보면 성공한다는 그야말로 평범한 진리를 얘기하고, 대우 익스포져 문제처럼 "실천"을 강조한 겁니다.
◈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은 용기"
실천 문제는 곧바로 "요즘 학생들"로 옮겨졌습니다. "미국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은 용기"라는 말로 화제를 옮긴 김 행장은 "편안하고 위험없이 살려면 무덤에 가서 눕는 게 낫다"고 또 한차례 독설을 품어내는군요.
이 얘기를 좀 더 경제적인 용어로 풀어볼까요. "(요즘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안정성을 너무 추구하고 리스크에 걸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이 얘기는 김 행장의 "공무원론"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사회가 얼마나 다양화되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지를 강조한 겁니다.
김 행장은 "최근 인사청문회를 재밌게 봤다"며 "언제부터 우리가 저런 걸 상상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변화하는 모습을 봐야하고, 그에 따르는 리스크에 몸을 던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성공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미래의 은행이 어떻게 바뀔 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20여개의 은행이 있지만 몇개의 은행이 남아야 하는지 다들 생각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는 "국내 은행권에 니치마켓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은 있느니 없느니 생각이 다르고 소유구조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얘기합니다.
여하튼 김 행장의 키워드(Key Word)는 "분명한 건 미래는 지금과 다르다는 것"이군요.
◈ "미래에 베팅하라"
이제 김 행장의 결론을 들어볼까요. 김 행장의 결론은 선명하고도 간단 명료합니다. "미래에 베팅하라"는 거죠. "미래가 어디로 가는지 보고, 또 어디로 갈지 스스로 판단하고 베팅하라"는 얘깁니다. 물론 점쟁이가 아닌 이상 접근하려는 노력은 해야 하죠. 마치 흐르는 강물에서 멀리 보기위해 목을 내놓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설사 처음에 미래를 잘못보면 어떠랴. 내가 공부할 땐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몇개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직업에 귀천이 없고 500개, 아니 5000개의 길이 있다"는 게 김 행장의 얘깁니다.
어차피 리스크를 부담하고 배팅하지 않으면 뭘 하겠다는 건가. 김 행장의 말을 빌면 "공무원이나 하고, 아예 그것도 안되면 무덤에 가 눕는 길밖에 없다는 거죠.
그는 이어 "우리 사회의 문제는 너무나 결과의 평등을 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북한도 차별화의 길로 들어섰다"며 "사람을 차별 대우하고 값을 매기는 그런 현실이 눈앞에 오고 있다"게 그의 생각입니다.
"노조는 반발하겠지만 기업 입장에선 차별의 폭을 키우는 것만이 좋은 인재를 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결국 리스크에 투자하는 것이 성공의 길임을 강조합니다.
김 행장의 얘기를 듣다보면 역시 "장사꾼"의 기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학부생들에게도 진취적인 사고를 심어주는 데 손색없는 얘기들입니다.
그는 CEO로서의 경영판단을 상당부분 "운이 따랐다"고 겸손해 했지만 "원칙에 입각한 소신판단"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 그러나…
그러나, 한편에선 의문도 듭니다. 요즘 국민은행 주가가 말이 아닙니다. "가계대출 부실"이라는 이유로 국민은행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하루이틀의 주가를 보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건 분명 금물입니다. 또 애널리스트들의 조금은 얄팍한 코멘트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집니다.
중요한 건 주가가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김 행장이 추구한 "소매+소매"를 통한 "시장 지배력" 논리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김 행장 스스로 설정한 데드라인인 전산통합이 아직 이뤄지지 않아 조금은 성급할 지도 모르나, 이 같은 시장 지배력을 기대하긴 어려워진 건 아닌지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어찌됐건 시장의 반응은 "합병 국민은행이 앞으로 시장 지배력을 확실히 향유할 것이다"는 것보다는 두 은행의 합병으로 가계부실에 대한 충격이 두배로 늘었다는 것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김 행장은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의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소호 영업을 강화하고,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고, 좋은 인재를 확보하고 위한 노력들이 그런 것들이죠.
김 행장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볼까 합니다. 그는 "리스크에 걸고 미래에 베팅하라"고 했습니다. 합병 국민은행은 이런 측면에서 분명히 리스크가 증대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리스크에는 걸었군요.
베팅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결국 이것이 "은행이 장사꾼을 원하느냐 뱅커를 원하느냐"는 논란의 마침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