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또 만들려면···" 끝내 눈물떨군 이건희

이정훈 기자I 2008.07.01 21:04:41

"먹고살 고민에만 매달렸다"..회한섞인 눈물에 법정 `숙연`
21년간 회장직 속내 다 털어놔..인간적 면모 보여

[이데일리 이정훈기자] 삼성그룹 회장이라는 무거운 굴레를 벗어 던지고 법정에 선 이건희 전 회장이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불법 경영권 승계와 조세포탈 혐의에 초점이 맞춰진 공판에서 21년이라는 오랜기간 동안 묻어둔 고민과 속내를 털어놓은 이 전 회장의 인간적 면모가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삼성그룹 `전(前) 회장`이 된 첫 날인 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 관련 제6차 공판에서 이 전 회장은 오랜만에 가슴속에 담긴 말들을 쏟아냈다.

원고측 심문에서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런 지시한 적 없다"는 짧은 대답으로 일관하던 이 전 회장이 입을 연 것은 민병훈 부장판사가 직접 피고인 심문에 나서면서부터.

민 부장판사는 대뜸 "삼성그룹 내에 많은 계열사들이 있는데 회장으로서 어떤 계열사를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 전 회장은 망설임없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라고 답했다.

이 전 회장은 "삼성전자(005930)가 만드는 제품 가운데 11개가 세계 1위인데,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우리나라에서 또 이런 회사를 다시 만들려면 10~20년이 걸려도 어려울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힘있는 어조로 얘기하던 이 전 회장이었지만, 답변 말미에서는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결국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회장직으로만 21년, 삼성 임직원으로 42년을 몸담아 오면서 그가 이뤄낸 성과와 그 이면의 노력, 현재 자신의 상황 등이 한데 맞물리면서 회한이 가슴 속에 북받치는 것 같았다.
 
이 전 회장의 이런 모습을 예상하지 못했던 듯, 민 부장판사 역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심경을 좀 추스리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답변해도 된다"고 말했고, 잠시 쉰 이 전 회장은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삼성생명은 국민 생명을 좌우하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우리가 보험을 잘 만들어 잘 팔수록 가입자는 유리해지고 그만큼 적은 돈으로도 무거운 질병을 다스릴 수 있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삼성그룹 수장으로서 가졌던 철학과 고민들도 쏟아져 나왔다.

이 전 회장은 "개인적으로 나는 경영자일 뿐 단 한 번도 지배주주라고 생각한 적 없다"며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그룹의 새로운 사업, 기술개발 등에 대해 고민하고 열중해왔다"고 회고했다.

"지배주주로서 지분을 관리하지 못하면 경영권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느냐"는 민 부장판사의 질문에 그는 "물론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은 "연구개발을 어떻게 해서 세계 1등 제품을 더 내놓느냐가 중요하다"며 "열심히 경영하는게 (경영권 위협에 대한) 가장 좋은 수비라고 생각한다"고 그의 철학을 설명했다.

아들인 재용씨에 대한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서도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 전 회장은 "솔직히 재용이에게 내가 가진 재산을 증여하고 상속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을 계속해 왔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재용이가 후계자가 되려면 일단 자금 여유가 있어야 하고, 본인의 능력이 닿아야 한다"며 "그 능력이 후계자로 적당치 않으면 절대 이어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영권에 대한 얘기가 많은데, 실제 주식을 100% 가지고 있더라도 그 회사가 능력이 없고 본인이 경영능력을 가지지 못하면 1% 지분을 가진 것만도 못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아들과 함께 법정에 선 아버지의 심정에 대해서도 "이런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법정에서 재판부는 이재용 전무가 증인심문에 나설 때 "부자가 한 자리에 있는 것이 껄끄러울 수 있기 때문에 심문동안 이 전 회장이 퇴청해 있어도 된다"고 배려했지만, 한동안 망설이던 이 전 회장은 "그래도 (심문을) 듣겠다"며 자리를 지키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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