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이탈리아의 영화이론가 리치오토 카뉴도는 영화를 ‘제7의 예술’이자 기존 예술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영상,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적 요소들 가운데 내러티브를 이끄는 영화 속 핵심 장치는 무엇일까? 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에서 나쁜 영화는 나올 수 있지만, 나쁜 글에서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이같은 연유로 나는 감독이 쓴 영화 속 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사’에 집중해 영화를 감상하는 편이다. 앞으로 대사를 통해 영화를 톺아보면서 감독이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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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상영회 행사에 참여하게 된 예술영화 감독 함춘수(정재영)가 진행팀의 실수 탓에 하루 일찍 도착한 수원에서 우연히 만난 화가 윤희정(김민희)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 한 줄로 정리한 줄거리로도 감이 잡히는가? 이 영화는 놀랍게도 최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홍상수와 김민희의 스캔들과 묘하게 닮아 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약 10개월 전인 지난해 9월 24일 개봉한 영화다. 영화 속 배경이 겨울이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책(시나리오)은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2년 전에는 쓰여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쩌면 홍상수 감독은 언젠가는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책을 썼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자전적 이야기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홍상수 감독이 극 중 함춘수의 입을 빌려 고백한 일종의 ‘예언’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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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루에 입장하는 윤희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함춘수로 시작되는 영화는 1박2일 동안 발생한 이야기를 120분에 담아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60분으로 압축된 1박2일을 두 번 반복한다. 1부와 2부는 모두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을 겪는 같은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심지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제목과 주제곡(OST)마저 반복된다.
하지만 이 동일한 이야기 두 편은 전혀 다른 결말을 초래한다. 이는 두 사람 간 대화(말)의 미묘한 차이에서부터 시나브로 파생된 결과다. 미국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1961년 만든 단어 ‘나비 효과’처럼 말이다. 영화는 지금도 그때도, 즉 매일 반복되는 동일한 일상 속에서 엔딩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는 말의 ‘뉘앙스’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역설하고 있다.
두 편으로 구성된 영화에서 관객이 주목해야 할 차이점은 뉘앙스뿐만이 아니다. 함춘수의 독백 유무와 이에 따른 카메라 시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수원에는 처음 와 본다”라는 독백으로 시작하는 1부는 함춘수의 목소리에 초점이 맞춰진 주관적 영화다.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카메라 앵글도 매우 주관적인 기법을 따른다. ‘인물’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카메라는 줌 인 등을 통해 이들의 ‘내면’에 집중한다. 홍상수 감독은 이를 통해 자신의 주관적이지만 솔직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
반면 2부는 함춘수의 독백이 배제된 채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영화다. 1부와는 달리 카메라 앵글 역시 한발 떨어진 곳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장면’을 담는다. 감정보다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진 2부에서 홍상수 감독은 제삼자인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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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밌는 것은 독백 유무, 카메라 앵글, 대사의 뉘앙스 등으로 완전히 다른 결말에 이르는 두 편의 영화 모두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영화임에도 1부에서 오가는 등장인물 간 대화는 전혀 사적이지 않다. 이상하리만큼 공적이고 형식적이며 방어적이다. 때로는 아무 의미 없는 소리를 하기도, 때로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함춘수와 윤희정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선은 매우 우호적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결국 ‘새드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반면 거리를 둔 채 진행되는 객관적인 2부에서의 대화는 오히려 매우 사적이다. 윤희정은 함춘수를 이날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끊은 담배, 이혼한 부모님 등 민감한 소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사적임과 동시에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뉘앙스도 풍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영화는 ‘반쪽짜리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를 무질서하게 뒤섞어 놓은 두 편의 영화로 구성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문자 그대로 ‘역설’이다. 문학적 용어로서 역설은 표면적으로는 모순되고 부조리해 보이지만 해석의 과정을 거쳤을 경우 그 근거가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는, 깊은 진실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영화에서 상영회를 마친 함춘수는 ‘영화의 정의’를 묻는 평론가의 질문에 “말의 힘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답한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비문으로 횡설수설하는 함춘수의 인터뷰 대사 역시 ‘역설’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써 접근할 필요가 있다. 홍상수 감독은 사소한 뉘앙스 차이로 결말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한 이 영화에서 함춘수의 입을 빌려 ‘역설’을 역설하고 있다.
고대 로마 제정 초기 수사학자인 쿠인틸리아누스는 역설을 ‘공통된 견해(공론)에 반대되는 진술을 통한 의미 전달, 예기치 못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대한민국의 공론에 반하는 예기치 못한 역설적 로맨스. 최근 그들이 처한 스캔들 상황과 똑같지 않은가? 어쩌면 홍상수 감독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통해 본인의 ‘역설적 로맨스’를 해명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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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인대화로진행되는두시간분량의‘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는‘답답하다’는대사가수차례반복된다.그냥무심코지나갈수도있는이대사에서나는특별함을발견했다.하지만이특별함은어쩌면나만이느낀착각일수도있다.그래도나는답답함을토로하는이대사야말로홍상수감독이이번영화에서하고싶은말을직설적으로표현한대목이라고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기분은 어떠했는가? 혹시 매우 답답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홍상수 감독이 자전적 예언 영화를 통해 밝히고자 했던 심리를 파악해 낸 내 의도가 잘 전달된 것이다.
방금 언급한 대로 답답함은 이 영화 속에서 수차례 반복되고 있다. 아마도 홍상수 감독은 예기치 못한 역설적 로맨스 탓에 받고 있는 비난 속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을 배우의 입을 빌려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같은 해석은 영화의 제목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은 영화의 제목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배제했다.
나는 홍상수를 정말 대단한 감독으로 평가한다.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글을 가장 잘 쓰는 감독 중 한 명으로 꼽는다. 그런데 문장력이라는 강한 무기를 지니고 있는 그가 띄어쓰기를 몰랐을 리도 실수했을 리도 만무하다. 자전적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제목은 홍상수 감독이 철저하게 설계한 결과물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12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개막한 ‘제27회 마르세유국제영화제’는 ‘홍상수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다. 홍상수 감독 역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속 함춘수처럼 관객과의 대화 등 현지 행사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10개월 만에 영화 속 함춘수는 현실 속 홍상수가 됐다. 다수 매체가 윤희정을 분한 주연 배우 김민희의 동행 여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객관적인 영화(2부) 속 카페에서 ‘불어 공부’ 등으로 심심할 틈이 없다는 윤희정의 대사는 이미 2년 전 완성된 글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역설적 로맨스를 쫓아다니면서 이들을 비판하지 싶지도 옹호하지 싶지도 않다. 다만 제삼자의 시선(2부)에서 ‘특이한 미치광이 감독’으로 정의된 함춘수의 대사, “정말 웃기고들 있네. 아니 이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정말, 그렇게들 찾느라고 난리인지 모르겠어요”가 내게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영화 1부의 마지막 부분에서 함춘수 감독의 열혈 팬을 자처한 주영실(서영화)이 그에게 건넨 책 속의 문구와 내래이션, “우리 삶의 표면에 숨겨진 것들의 발견만이 우리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길이라는 생각에 저도 공감합니다”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1866년작 ‘죄와 벌’ 속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시베리아로 유형되자 소냐는 그의 뒤를 따랐다. 영화 속 함춘수·윤희정, 현실 속 홍상수·김민희도 유사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인지는 여러분 각자가 판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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