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한상복기자] 고등학교 시절, 그 누구도 피해가기 어려운 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수학의 정석"이라는 참고서, 기억하시지요? 이 두꺼운 책을 펴놓고 씨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야말로 "수학 공부의 바이블"로 통하던 책이었습니다. 투자에도 정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석이 시들해지고 있답니다. 증권부 한상복 기자가 나름의 느낌을 정리해봤습니다.
처음 고등학교에 진학해 "수학의 정석"을 접했을 때, 첫 느낌은 "기가 질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두꺼운 책을 언제 다 보나"하며 망연자실했었지요. 그 두꺼움이 범접키 어려운 신비감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정석"을 집요하게 파고 든 친구들은 수학에서 좋은 점수를 딸 수 있었습니다.
재산을 모으고 불리는 데도 정석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한푼 두푼 모아서 목돈을 만들고, 그것을 굴려 큰 자산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의심스럽다면, 주변의 부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들의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아껴 쓰고 저축했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다"는 대답 일색일 것입니다. 자수성가한 모든 부자들의 출발점은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월급쟁이 출신입니다.
자수성가 부자들의 첫걸음은 저축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것이 만국공통의 정석입니다.
하지만 요즘 이같은 "정석 코스"를 찾는 사람이 크게 줄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경제를 일으켰던 "돼지저금통의 신화"가 아련한 기억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80년대 이후 30%대를 유지했던 저축률이 최근 20%대로 하락했습니다.
특히 젊은층의 저축 기피가 심한 것 같습니다. 20대의 저축률은 90년대 평균 30.9%에서 2002년 현재 24.6%로 크게 줄었습니다. 30대 저축률도 30.1%에서 27.1%로 급감했습니다.
저축이 자취를 감춘 자리에는 "즐기고 보자"와 "대박을 터뜨리자" 심리가 또아리를 틀었습니다. 일단 고급차를 뽑아야 하고, 이따금 남들 가는 해외여행도 다녀와야 합니다. "한번 사는 인생, 즐겨도 모자란다"는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10~20% 수익은 수익이 아닙니다. 40배, 50배는 터져야 직성이 풀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묘한 것은 "즐기자파"와 "대박파"가 서로 다른 부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즐기는 사람이 대박을 원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낮은 금리와 치솟는 부동산 값이 저축 기피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뼈 빠지게 모아봐야 이자는 몇푼 붙지도 않고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으니, 어디 저축할 마음이 나겠습니까. 아예 포기하거나 "뾰족한 방법"을 찾는 수 밖에요.
고등학교 시절, "수학의 정석"에 충실하지 못했던 친구가 높은 수학점수를 받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두터운 내공을 강조하는 정파의 길을 외면하고 사마외도(급성신공을 표방하는 쪽집게 시리즈)의 길에 접어든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중도 탈락(수학 과목 포기)을 했습니다. 뾰족한 방법이란 것이 소용 없었던 셈이지요.
처음의 출발점은 비슷합니다. 수학공부나 재산축적이나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가 나고 격차가 벌어집니다. 정석으로 다진 든든한 기초가 없는 한 투자는 모래성이 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습니다. 투자 안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돈에 대한 다년간의 내공"이기 때문입니다. 저축을 하며 내공을 쌓을 수 있습니다.
저는 투자의 정석(저축을 통한 목돈 마련과 운용)이 여전히 유효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윳돈을 만들어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과, 생활비를 빼거나 빚을 내 단기투자를 하는 사람간에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부자가 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끈기와 여유인 것 같습니다.
한껏 기대했던 로또복권이 꽝 났을 때마다 이런 회상을 해보는 것은 어떤지요. 고등학교 시절, 씨름을 했던 "수학의 정석"과 그 두께, 자신의 끈기 말입니다. 수학도 어렵지만 돈 버는 공부는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평생 연마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무림 신공이지요.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