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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는 지난 달 10일 미 오하이오주(州) 신시내티 본사에서 연례 주주총회를 열고 펠츠 회장의 이사회 합류 안건에 대한 표결을 진행했다. 예비 집계 결과 P&G 측이 1% 미만의 표차로 승리, 기존 이사회 멤버 11명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승리를 얻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던 펠츠 회장 입장에선 아쉬운 결과였다. 당시 펠츠 회장은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결과가 뒤집혔다.
트라이언 측이 공식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펠츠 회장은 P&G보다 4만2780표 많은 9억7195만3651표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20억표의 0.0016%에 해당하는 근소한 차이였다. 개인 투자자들의 표가 변수가 됐다. 개인 투자자들의 표는 지지를 받은 쪽에서만 확인할 수 있어 상대 진영에서 얼마나 많은 표를 얻었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는 분석이다. 또 개인 투자자들이 브로커가 아닌 본인의 이름을 적어 내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도 결과를 예측하는데 어려움을 보탰다. P&G의 개인 투자자 비중은 40%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평균 12%를 크게 웃돈다.
펠츠 회장 측은 즉각 승리를 선언하고 이사회 자리를 요구하며 P&G 측을 압박하고 나섰다. 트라이언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P&G에 결과를 받아들이고 더 이상 주주들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면서 “주주들은 펠츠 회장이 이사회에 가입하길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P&G 측은 “여전히 예비 집계 결과일 뿐”이라며 “양측 모두 표결이 불일치한 것에 대해 검토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며 불복했다. P&G 주가는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 정규 거래에서 0.7% 하락 마감했지만 소식이 전해진 뒤 시간외 거래에서는 3% 급등했다. 펠츠 회장의 이사회 합류 및 이에 따른 P&G의 사업 전략 재편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P&G가 펠츠 회장의 타깃이 된 것은 글로벌 경기악화, 자금난, 신생기업들과의 경쟁 등으로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트라이언펀드는 P&G가 질레트, 위스퍼 등 글로벌 빅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음에도 경쟁 기업들에게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거나 비용절감을 수익으로 전환시키는데 재빨리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해 왔다. 그 근거로 P&G 주가가 지난 10년 간 S&P500은 물론 경쟁 업체들이 포함된 소비재업종 지수보다도 나쁜성적을 거뒀다는 점을 제시했다.
특히 펠츠 회장은 미용과 헬스케어 등 연계 사업부문을 3개로 통합·간소화하고 판매·마케팅·제조 등은 사업부문별로 독립 운영하는 등 5개 부문으로 분리 경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비자들은 빅브랜드보다는 독특한 감성과 스토리가 있는 스몰 브랜드를 선호한다”면서 “P&G가 빅브랜드의 과거 성공사례에 매몰돼 시대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P&G는 세계 최대 소비재 생산 기업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함부로 버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P&G는 연례 주총 당시 “지난 8월 데이비드 테일러가 신임 최고경영자(CEO)에 임명된 이후 총 주주수익률 28%를 달성했고 계속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7월에도 P&G는 성명을 내고 “이사회는 회사가 변화를 통해 생산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확신하며, 회사의 (현재) 전략, 계획 및 관리에 대해 한 뜻으로 지지하고 있다”며 펠츠 회장에 맞섰다.
이번 위임장 대결은 P&G와 펠츠 회장이 승리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양측 모두 미 전역을 돌며 주주들의 지지를 확보했으며, 이 과정에서 무려 총 6000만달러의 비용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펠츠 회장이 약 2500만달러를, P&G 측은 3500만달러 이상의 자금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칼 아이칸과 함께 월가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기업 사냥꾼이자 대표적인 행동주의자로 꼽히는 펠츠 회장은 지난 2015년에도 미 대표 종합화학기업인 듀폰과 위임장 대결을 펼친 바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는 투자한 기업에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등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는 물론 구조조정, 인수·합병(M&A), 경영진 교체 등까지 요구하는 투자자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