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포르노(Pornography)는 성적 욕망과 미디어 기술, 자본이 결합한 대표적 산업이다. 성(性)에 대한 금기와 엄격한 도덕적 잣대, 보수적 분위기의 압박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했다. 미디어 환경이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덩치를 무시할 수 없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시련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최근 급변하는 인터넷 환경에서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고 사회적 압박도 강화하는 분위기다. 포르노 산업은 엄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 카멜레온 같은 변신과 진화를 추구하고 있다.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인 셈이다.
◇‘홈 비디오’ 시대 개막…‘1990년대’가 황금시대
과거 포르노물은 값이 비쌌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 딱지를 붙이거나 금기시해 공급은 제한적인데 수요는 늘 존재했기 때문이다. 팔기만 하면 꽤 짭짤한 사업이란 얘기다.
포르노산업의 황금기는 지난 1990년대다. 당시 비디오와 DVD가 보급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 있는 수많은 포르노 제작사들이 매년 수백 편의 필름을 찍어 팔거나 빌려주며 앉아서 목돈을 챙겼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당시 청계천 거리를 중심으로 포르노물을 판매하는 업자들이 넘쳐났다.
인터넷이 도입된 초기까지도 포르노산업은 여전히 수익성이 높은 산업에 속했다. 수익모델은 단순했다. 돈을 계좌로 입금하거나 카드결제를 하면 인터넷을 통해 그림이나 영상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만 3000개 성인물 사이트가 성행했다.
◇공유사이트가 대세‥수익성은 되레 악화
포르노산업도 ‘무료시청’ 개념이 도입되면서 업계에 큰 변화가 몰아닥쳤다. 업자들이 초기에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려 맛보기로 예고편을 보여주거나 ‘섬네일’(thumbnail·미리보기 이미지)을 제공하는 식이었다. 인터넷이 빨라지며 그림은 영상으로 대체됐고 광고를 시청하면 많은 영상을 자유롭게 내려받아 볼 수 있는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Youtube) 시대가 열리며 무한 경쟁이 일상화했다.
동영상 사이트가 활개를 치면서 콘텐츠 제작자들이 죽을 맛이 됐다. 미국에서 포르노영화 제작사는 전성기 때 200개에서 최근 20개로 줄었다. 연기자들 임금은 시간당 1500달러에서 500달러로 급전직하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극적인 콘텐츠 생산에 내몰렸다.
동영상 사이트가 생기기 직전 전 세계 포르노산업 매출은 약 400억~500억달러 수준이었다. 최근에는 당시와 비교해 매출의 4분의 3은 사라졌다.
◇‘클릭=돈’ 알아 챈 포르노업계
요즘 포르노는 대부분 무료다. 인터넷에서 구하기도 쉽다. 많은 방문자가 동영상 사이트에 몰리며 트래픽이 급증하고 있다. 포르노를 유통하는 유튜브(Youtube)와 비슷한 플랫폼인 ‘폰허브’의 작년 방문자 트래픽량은 180억 이상을 돌파했다. 방문자들은 이 사이트에서 800억개의 비디오를 시청했다.
포르노업계는 트래픽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 곳이다. 북미에서만 7억~8억개 개인 포르노페이지가 있다.
동영상공유사이트가 생기기 시작했던 초기에는 다른 유료사이트를 연결해주는 중계업자에게 트래픽을 판매해 수익을 올렸다.
최근에는 사용자 데이터를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여 광고회사에 넘기면 이 정보를 활용해 타깃 광고를 하는 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트래픽정키’라는 광고회사는 포르노사이트에서 받은 정보를 활용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게이의 모바일로 맞춤광고를 보낸다.
◇동영상사이트 수익 독식…콘텐츠 생산업자는 죽을 맛
동영상사이트 영향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부작용도 커졌다. 포르노 산업에서 발생한 수익 대부분을 동영상사이트가 독차지하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포르노공유 사이트에는 수많은 광고가 몰린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 사이트에 접속하기 때문에 1000명 방문자 가운데 1명만 유료 구독을 결정해도 남는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또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헐값에 사들이고 이렇게 축적한 콘텐츠로 소비자를 끌어들여 점점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콘텐츠 생산업자 입지는 점점 더 축소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현상이 소셜미디어(SNS) 생태계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페이스북·스냅챗·인스타그램은 사용자에게 맞춰 제공하는 뉴스를 통해 자사 트래픽을 높이는 데 활용한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소셜미디어가 단지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주인행사를 한다고 꼬집었다.
◇성장한계 도달한 업계‥변화 통해 활로 모색
포르노 동영상 사이트는 덩치가 커지면서 포화상태에 도달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인수·합병(M&A)을 추진하거나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자극적인 이벤트로 사회적 이목을 끌어 사용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미국의 한 포르노공급업체는 매달 10달러를 내면 고품질의 동영상을 제공하는 유료 스트리밍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성장 모멘텀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규제 리스크와 구글을 포함한 포털의 검열도 한층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또 비자나 마스터카드가 포르노사이트의 결제를 거부하고 범람하는 악성코드에 대한 불안도 포르노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업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포르노업계는 특히 가상현실(VR) 부문을 주목하고 있다. 비디오게임 기술이나 성인용품 업체와 손잡고 환상을 실제화하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 기세다.
이코노미스트는 “포르노업계가 예전처럼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변신하지 않는다면 열매도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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