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영원히 프리미어 리그 못올라갈수도"

조선일보 기자I 2007.06.12 21:28:34

장하준 英케임브리지대 교수, 우리 경제 ‘빨간불’ 경고

[조선일보 제공] “한국 경제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면 영원히 프리미어 리그(영국 프로축구 1부 리그)에 못 올라가고 그저 괜찮게 사는 나라로 끝나고 말겠죠.”
▲ 장하준 인터뷰 사진/런던시내 한 노천카페에서

신(新)자유주의 경제모델의 단골 공격수인 장하준(張夏準·44·사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내달 5일 시판 예정인 ‘악한 사마리아인(Bad Samaritans·쓰러진 사람을 도와주는 척하며 돈을 강탈했다는 아랍의 한 민족)’ 출판을 앞두고 11일 런던 시내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한편으로 시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박정희식 산업 정책과 재벌을 옹호하는 독특한 스탠스로 좌파와 우파 양쪽 모두에 도전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투자 없는 성장은 없다”며 “중국과 기술로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서 투자 하락은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경제, 뭐가 문제인가.

“투자 감소가 가장 걱정이다. 외환위기 이전 국민소득의 13~14% 수준이던 설비투자가 지금은 7%로 반 토막 났다. 지식사회로 접어들었다며 투자와 기술혁신을 별개로 보는 경향도 있는데 틀렸다.”


기업들이 주주 눈치 보느라 투자 못하는게 가장 큰 문제


―투자가 왜 줄어드나.

“주주 자본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다. 주주 눈치 본다고 기업은 단기 이익만 노리고 배당률만 높이고 있다. 포항제철은 과거 신일본제철의 용광로 기술을 과감히 가져와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의 포스코는 배당률 50%를 맞추느라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못한다. 오히려 인도의 신흥 철강재벌 미탈그룹이 노리고 있다는 얘기로 식은땀을 흘리는 상황이 됐다. 외환위기 이후 주주들은 돈 빼내가는 데 급급하고 기업도 현금자산만 늘리고 있다. 생산적으로 돈이 돌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대신 영국처럼 금융 등 서비스 산업으로 먹고 살 수 있지 않나.

“영국의 금융산업이 계속 잘된다는 보장이 있나. 그리고 금융은 실물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꺼번에 경제 전체가 꺼질 수 있다. 영국은 역사적으로 제조업이 강했던 특수한 나라로 우리와 여건이 다르다. 스위스도 관광산업으로 유명하지만 제조업도 강한 나라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가능성 없는 금융허브니 물류허브니 하는 데만 매달려 제조업을 도와주지 않고 있다.”


영국같은 ‘금융허브’의 꿈? 제조업 뒷받침 안되면 위험

―자유무역에 부정적인 입장인데….

“한미 FTA는 지금도 반대한다. 헤비급선수와 중량급선수, 경량급선수가 한 링에서 시합할 수는 없지 않나. 미국의 FTA는 다른 나라와 다르다. 무역과 관계없는 지적재산권 등 많은 제약이 뒤따르고 많은 부분을 열라고 할 것이다.”


재벌, 국민 희생으로 컸지만 때려잡는다고 누가 이익보나

―재벌에 대해서는 지금도 우호적인 입장인가.

“한국의 재벌은 국민의 희생 속에 이만큼 컸다고 볼 수 있다. 죽이는 것보다 껴안고 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고리대금업으로 부자가 됐다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데 열중하다가 산적들이 자기 집 곳간 털어가는 것을 모르는 상황이 되면 안 된다. 재벌 때려잡아서 누가 이익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개방 등 세계화에 반대하나.

“난 세계화 반대론자가 아니다. 자기 실정에 맞는 속도로 개방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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