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좌동욱기자]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 0.75%포인트 인하라는 전례없는 대책을 발표하자, 이번엔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내놓을 보따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에 기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을 확대 편성, 내수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방침엔 정부내에서 이견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세계적 실물경제 침체에 대비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확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빠르면 이번 주 실물경기 활성화 종합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관건은 재정 지출을 얼마나 늘릴지, 또 어디다 쓸지를 정하는 문제다. 특히 예산안과 감세안은 국회 의결 사안이기 때문에 당정간, 여야간 논의 과정에서 정부 대책이 수시로 뒤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 재정 지출 얼마나 늘까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정부 지출 규모를 올해보다 6조5000억원(4.5%) 증가한 273조8000억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경기 둔화로 당초 전망보다 예산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지출을 확대하기는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재정부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질 경우 1조5000억원~2조원 가량의 국세 수입이 줄어든다. 예산안을 짤 당시 정부가 가정한 내년도 성장률은 5% 내외로 현재 민간연구소들의 추정치와 최소 1%포인트 이상 격차가 있다.
이 때문에 재정 지출 확대 규모는 10조원 이상을 넘기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추가되는 정부 예산은 주로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나 서민·중산층 사업에 배정한다는 방침.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앞으로 경기가 나쁘기 때문에 실업문제나 서민층, 중산층들의 생활고통이 커질 것"이라며 "세출 부문에서 정부가 낸 부분을 기초로 이런 부분에 대한 정부 대책이 조금 더 추가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자라는 세수입은 적자국채를 발행, 충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내년 적자국채 발행은 당초 계획한 7조3000억원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이와 별도로 정부가 경기 상황에 탄력적으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 논의도 활발해 질 것으로 전망된다.
◇ 소득세율 인하 시점 앞당길 수도
이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가 감세 필요성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지만, 현재 세금을 더 깎아줄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 정부가 이미 발표한 감세 규모만 27조원을 웃도는 데다, 감세 정책의 효과도 재정 지출보다 늦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감세안을 발표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감세안을 줄이지 않고 국회를 통과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정부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현재 당정이 검토하고 있는 방안은 소득세 인하 시점을 1년 앞당기는 것. 올해 세제개편안에서 2009년과 2010년 각각 1%포인트씩 내리도록 했던 방침을 2009년 한꺼번에 2%포인트를 인하하는 것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다. 이 대책만으로도 내년 세수가 2조원 이상 줄 수 있다.
당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한 감세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임태희 의장은 이날 "부동산 거래가 보다 더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추가적인 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정감사 답변과정에서 1가구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제도에 대해 "과세논리상으로 문제가 있다"며 세법 심의과정에서 개정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발표된 감세 카드를 적절히 뒤섞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위위원장인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개인의견을 전제로 "종부세, 상속세는 경제 활성화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니 조금 (감세 시기를) 늦추는 것이 낫겠다"며 " 1∼2년 뒤에 하면 세수가 유보되니 세출을 좀 덜 손봐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수도권 규제 풀릴까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규제 완화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간 지자체의 반발로 유보되고 있던 수도권 규제 완화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 대통령도 이날 시정연설에서 "국민정서를 빌미로 아직도 성역으로 남아있는 덩어리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덩어리 규제엔 수도권 규제 완화가 포함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달 '제 2차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확대를 위한 민관합동회의'에서 수도권 내 공장·신·증설을 억제하는 각종 규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 구체적인 내용과 시행시기는 확정하지 않았다.
정부가 검토 중인 수도권 규제는 `수도권정비계획법`과 `산업집적화 및 공장설립법`에 따른 각종 공장 설립 규제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자연보전권역 내 6만㎡ 이상의 공업용지 조성을 원천 금지하고 있으며 산업집적화 및 공장설립법은 성장관리권역 내 일부 예외 업종을 제외한 대기업의 공장 증설을 제한하고 있다.
이천에 위치한 하이닉스나 여주에 소재한 KCC 등 수도권에 위치한 기업들은 수도권정비계획법 등으로 인해 공장 신·증설 투자가 제한되고 있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들 기업들의 숙원도 풀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함께 비정규직들의 고용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