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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회계업계 상위 4개 법인이 지난해 성적표를 모두 제출했다. 대우조선해양 사건을 계기로 달라진 매출 순위가 정착하면서 관심은 고액 연봉자 숫자에 쏠렸다. 이번 사업보고서부터 5억원 이상 보수를 받는 이사진 명단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회삿밥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급여는 곧 자존심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입사 동기끼리도 묻지도 답하지도 말라던 ‘대외비’인 봉급. 하지만 취업준비생들조차 제일 먼저 귀동냥하는 게 월급이다.
전문자격사 중 하나인 공인회계사들이 주축을 이루는 회계법인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다. 모이면 하는 얘기는 결국 얼마를 받느냐다. 속으로는 ‘나보다 많이 벌었네, 못 벌었네’ 서열 정리를 하느라 바쁘다.
5일 한영회계법인을 끝으로 대형 회계법인 4곳이 2019사업연도 사업보고서 제출을 마쳤다. 특히 ‘최고연봉자’는 누구인지, 각 사가 고액 연봉자를 몇 명이나 배출했는지 궁금증이 컸다. 사업연도가 제각각인데다 주력 분야도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지만, 법인 간 눈치싸움도 치열했다는 후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영식 전 삼일회계법인 대표이사(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몸값이 가장 비쌌다. 5억원 이상 보수를 받은 이도 삼일회계법인이 20명으로 가장 많았다. 회계법인들은 사전에 약속한 듯 매출순서대로 짭짤한 돈을 임직원들에게 안겨줬다.
업계에서는 공시 이전부터 삼일회계법인이 ‘연봉왕’ 타이틀을 가져가리라고 예견해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런 예상은 현실이 됐다. 회계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향해 순항 중인 삼일회계법인에서 김영식 전 대표가 근로소득으로 18억4600만원의 보수를 수령했다. 김 전 대표 외에도 윤훈수 현 대표이사(11억6700만원), 주정일 세무부문 대표(10억3200만원) 등 10억원 이상을 받은 경영진이 세 명에 달했고, 5억원 이상은 이들을 포함해 총 20명에 이르렀다. 삼일회계법인은 총보수를 총인원으로 나눈 1인당 보수도 1억4595만원으로 1억5000만원에 육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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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이어 삼정회계법인이 확실한 2위로 자리매김했다. 김교태 대표이사가 근로소득으로 14억9800만원의 보수를 수령했다. 퇴직소득 중간정산을 제외하면 사내 2위는 서원정 전 부회장(현 한공회 감리조사위원장)으로 8억2100만원을 받았다. 퇴직소득 중간정산을 포함하면 김광석 본부장이 9억4700만원으로 2위에 해당한다. 삼정회계법인은 삼일회계법인의 절반인 10명이 5억원 이상 보수를 받았다.
한영회계법인에서는 지난 2월 돌연 사임했던 서진석 전 대표이사가 11억4000만원을, 지휘봉을 넘겨받은 박용근 현 대표이사가 9억7100만원을 각각 수령했다. 이들을 비롯해 총 6명이 고액 연봉자에 이름을 올렸다. 안진회계법인은 홍종성 대표이사(8억5100만원), 최수열 파트너(6억9600만원, 퇴직소득 포함) 등 2인이 5억원 이상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삼일회계법인을 뺀 나머지 대형회계법인들은 1인당 평균임금이 고만고만했다. 삼정회계법인이 총 3506억9634만원의 보수를 지급했지만, 총인원이 3508명에 달하면서 평균보수는 9997만원에 그쳤다. 반면, 한영회계법인은 총 2023명에게 2139억9910만원을 지급해 인당 1억578만원을 가져갔다. 안진회계법인은 1인당 보수가 9550만원이었다.
◇ “왜 회계사만…” “연봉 쿠데타는 불가능”
이번 고액 연봉자 공개를 전후해 업계는 여러 불만을 토로했다. 변호사나 세무사 등 다른 전문직들로 구성된 조직들과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외부감사법 전면개정 과정에 들어온 내용으로 안다. 회계개혁과 별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임원들 간 불필요한 영업 경쟁만 부추기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외 회계사 자격을 보유했다면 등기이사직을 포기하면 공개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서 “국내 회계사 자격소유자를 역차별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상장회사들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지난 2014년부터 고액 연봉자를 공개해왔다. 회계법인들과 마찬가지로 초기에 반발이 있었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성과주의가 확실한 금융투자 업계의 경우 최고경영자(CEO)보다 연봉이 많은 임원이 다수 등장했다. 하지만 회계법인에서는 이런 역전 현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고정적인 매출원인 외부감사는 투입시간에 따라 보수가 책정되는 구조”라며 “업무 특성 상 개인 플레이보다 팀 플레이 중심이다 보니 인센티브 등 유인구조도 다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