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수산중공업(017550) 본사에서 만난 정석현(64) 회장의 꿈은 이제 현실이 됐다. 수입제품 일색이던 국내 건설장비 시장에서 유압브레이커와 크레인 등을 국내 최초로 국산화하고 세계 시장 5위권 업체로 기업을 일궈냈다.
정 회장은 집안이 어려워 전주공고를 졸업한 뒤 현대건설(000720)에 입사했다. 이후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야간대학(한양대 공대)에 진학했다. 사업에 대한 열망을 가졌던 그는 청계천에서 공구장사를 시작한 뒤 모은 자금으로 발전소 건설 하도급을 담당하는 건설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법정관리 중이던 수산중공업을 2004년에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건설 중장비 사업을 펼쳤다.
정 회장은 “회사를 인수한 뒤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말했다. 군납 및 관납사업을 철수하고 100%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130여개에 달하던 생산제품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경쟁력이 없거나 대기업과 경쟁을 할 가능성이 있는 제품들은 과감히 버리고 고부가가치 및 수익성 위주의 상품 중심으로 생산제품을 재편했다.
그는 “수산중공업 인수를 결정하게 된 것은 연구개발(R&D) 인력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외국에 비해 수준은 낮았지만 이미 일부 국가에 수출을 하고 있어 잘 다듬으면 회사를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인수자문을 하던 회계법인이 제안한 가격보다 20%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인수 당시 2000만달러 수준이던 수출규모는 2년 만인 2006년에 3000만달러까지 늘이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정 회장에게도 위기는 왔다. 지난 2008년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 사태로 170억원의 손실을 떠안으면서 회사가 위기를 맞았다. 당시 수산중공업은 약 3개월간 조업을 중단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임직원들이 월급 일부를 삭감하면서 고통을 나눴다.
정 회장도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을 챙기는 마음으로 임직원 복지를 유지하고 R&D에 집중하면서 정 회장은 키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 2013년 120억원을 투자해 생산시설을 대대적으로 교체했다. 신제품을 해외 70여개국에 선보였을 때 반응이 좋았는데 제품 출시 3~4개월이 지나자 심각한 고장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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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은 “당시 2~3년 사후관리를 하면 70억~80억원의 손실만 입을 수 있었지만 고객사와의 신뢰를 생각해 전량 리콜이라는 결정을 내렸다”며 “당시는 힘들었지만 책임감 있는 모습에 고객사들이 믿음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그는 엔지니어 출신답게 R&D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전체 직원의 약 20%가 R&D 인력이다. 정 회장은 “중견·중소기업이 R&D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서울·수도권에 연구단지 입주가 이뤄지도록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며 “우수 연구인력들이 대기업도 지방에 있으면 안가려고 하는데 중소기업에 오려고 하겠느냐”고 강조했다. 이어 “중견·중소기업의 R&D 수준이 높아지지 않으면 일본과의 격차는 벌어지고 중국에 추월당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수산중공업은 현재 유압브레이커(암반이나 콘크리트 파쇄기기) 시장에서 8%의 점유율로 세계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1위인 스웨덴의 샌드빅(11%)부터 4위인 일본의 후루카와(9%)까지 쟁쟁한 기업들과의 경쟁이 치열하다.
정 회장은 “세계 1~5위가 10여년간 고착화됐다”며 “소재 열처리 및 천공능력을 높여 2023년 매출 1조2000억원을 달성하고 유압브레이커 부문 세계 ‘톱3’에 드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그는 “중소기업들은 유가, 환율 등 외부충격에 매우 약하다”며 “과거 키코사태나 최근 개성공단 중단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결정적인 한 방에 중소기업은 소멸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보호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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