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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제표 읽던 은행직원들 대본읽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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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기자I 2014.08.19 15:21:15

IBK 문화콘텐츠부 신설
시나리오 등 꼼꼼 검토
영화·드라마 투자로 수익
'명량'으로 수익률 90%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지난해 12월 어느 날 은행 직원 13명은 126쪽 짜리 영화 시나리오 한 권씩을 받았다. 며칠 뒤 전체 회의가 열렸다. 13명 중 2명은 이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나리오를 살펴본 나머지 직원들의 반응도 좋았다. 적어도 손익분기점(BEP)은 넘길 것이란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이 영화에 투입되는 제작비는 180억원. 손해를 안 보려면 관객 650만명을 끌어모아야 하는데 적어도 이 수준은 넘어설 것으로 본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 영화는 개봉 2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21일만에 1500만명 돌파했다. 한국영화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 영화는 바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그린 ‘명량’이다.

최근 영화 ‘명량’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명량의 흥행을 예상한 이 은행 직원들도 사내 입지가 두터워졌다. 주인공은 바로 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 근무하는 직원들. 고객이 맡긴 돈으로 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은행에 문화콘텐츠 관련 부서가 있다는 게 얼핏 보면 신기해 보인다. 하는 일은 은행 본연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대상이 다르다. 영화·드라마와 같은 문화콘텐츠에 직·간접적으로 돈을 투자해 수익을 올린다. 영화 제작사를 비롯해 문화콘텐츠 관련 중소기업에만 특화된 대출상품을 설계하는 것도 이 부서 담당이다. 문화콘텐츠 사업만 전담하는 부서는 전 금융권 통틀어 이 부서가 유일하다. 지난 2012년 문화콘텐츠 사업팀으로 시작해 지난해 7월 부로 확대개편됐다. 인원 역시 8명에서 13명으로 늘었다.

기업은행이 문화콘텐츠금융부를 신설한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비전이 충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고경영자(CEO)의 의지도 한몫했다.

“문화콘텐츠 산업은 부가가치가 높고 고용창출 효과가 높아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금융권의 지원은 미약했죠. 명량처럼 대박을 터트리면 좋지만 반대의 경우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이렇다 보니 경영진이 밀어주지 않으면 리스크 관리를 가장 중요시하는 금융권이 문화콘텐츠 기업에 투자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정성희 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 팀장)

문화콘텐츠 사업을 전담하는 부서다 보니 직원들의 경력도 다채롭다. 영화 올드보이 배급사에서 몸담은 직원부터 방송국 PD, 콘텐츠진흥원 출신 등이 부서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구성원이 다양하다 보니 시너지 효과도 크다는 게 이 부서 윤성욱 과장의 설명이다.
△정성희 (앞줄 오른쪽)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 팀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투자했던 영화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투자의 시작은 시나리오 검토부터 시작된다. 명량 역시 이 과정을 거쳤다. 13명 모두 시나리오를 읽은 뒤 소위 느낌이 온다 싶으면 책임자 회의와 상위 기관인 심사부의 승인을 거쳐 투자를 결정한다. 단순히 시나리오만 좋다고 투자를 결정하는 건 아니다. 배우와 감독의 역량은 물론 영화가 나왔을 당시 경쟁작이 무엇인지도 살핀다. 은행이다 보니 제작사의 재정상태를 검토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에 투자하는 게 일반 기업에 대출해주는 것보다 품이 더 많이 든다.

“은행이 일반 제조업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줄 땐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신용이나 재무제표를 따지면 대출한도 등이 명확하게 나오거든요. 그런데 콘텐츠 산업은 달라요. 정보량이 적다 보니 발품을 팔아 정보를 모아야 하는데 이 시간이 상당히 걸려요. 투자를 추진하다가 상대편 신용에 문제가 생겨 깨진 적도 있습니다. 이럴 땐 힘이 빠지죠.”(정 팀장)

투자 성공률은 얼마나 될까. 기업은행은 올 6월 말까지 영화·드라마에 300억원을 투자했다. 전체 평균 투자수익률은 3.6%. 10개 프로젝트 중 6~7건은 수익을 냈다. 영화 관상이나 연가시는 각각 130%와 75%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영화 명량엔 기업은행과 CJ E&M이 함께 조성한 펀드를 통해 5억원을 투자했다. 1500만명을 달성하면 투자금 외 4억5000만원의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수익률만 90%에 이른다.

지금까지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문화콘텐츠 산업은 미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만 리스크가 크고 당장 수익이 기대되지 않다 보니 1금융권이 지원하려고 해도 최고경영자의 의지 없이는 추진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초기에 문화콘텐츠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여러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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