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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왕국 수도가 화장터 됐다"…美 100년만 화재 참사

이소현 기자I 2023.08.14 15:46:35

미 언론 "울리지 않은 사이렌…산불 위험 과소평가"
화마 휩쓴 하와이 사망자 93명 넘어서…실종 수백명
수색견들 불탄 폐허 샅샅이 뒤져…사망자 더 늘듯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미국에서 100년 만의 최악 화재 참사로 기록된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이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를 넘어 인재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세계적인 관광지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사흘째 산불이 확산하는 가운데 10일(현지시간) 서부 해변 마을 라하이나가 잿더미로 변해 있다. (사진=AFP)
우선 산불 대응 과정에서 경보 사이렌을 울리지 않는 등 미 당국의 미숙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하와이주는 쓰나미 등 갑작스러운 자연재해에 대비해 마우이섬 내 80개를 포함해 주 전역에 약 400개의 옥외 사이렌 경보기를 갖추고 있지만, 이번 산불에서는 한 곳도 경보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 당국은 화재 참사 뒤 논란이 일자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다. 앤 로페즈 하와이주 법무장관실은 성명을 내고 마우이섬 산불 전후의 주요 의사결정과 대응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 종합적인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하와이 당국자들이 산불 위험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CNN이 주 당국 및 지역 당국의 재난계획 문건을 분석한 결과, 하와이 당국자들이 산불 대응에 대한 자원 부족을 인정하면서도 산불 위험은 과소평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이번에 피해가 가장 큰 라하이나 지역이 마우이에서 화재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지적을 담은 민간기구 ‘하와이 산불 관리 조직’의 2014년 보고서를 언급하며, 당국의 대비 미비를 지적했다. 초목 관리, 사유지 및 시설 보호 등 라하이나 지역을 보호할 조치들이 포함됐으나, 일부 이행되는데 그쳤다고 짚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화재를 놓고 “인간이 초래한 복합적 재난”이라고 비판했다.

10일(현지시간) 산불로 까맣게 타버린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라하이나에서 주민들이 걷고 있다. (사진=AFP)
현재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하와이는 화마가 휩쓸고 간 라하이나 등 마우이섬 서부 일대를 중심으로 사실상 잿더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소방대원들은 여전히 불길과 싸우고 있으며, 수색견들은 희생자를 찾기 위해 마을의 불탄 폐허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현장 수습에 나선 존 펠레티에 마우이 경찰국장은 “유해를 주우면 산산조각이 난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영국 BBC는 “한때 하와이의 왕국의 수도였던 라하이나는 이제 화장터가 됐다”고 표현했다.

미국에서 100년 만의 최악의 화재 참사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하와이주 라하이나 카운티에 따르면 12일(현지시간) 기준 사망자는 최소 93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8년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 85명을 이미 넘어선 수치다. 미 소방협회에 따르면 소방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기 전인 1918년 미네소타주 클로켓에서 453명이 희생된 산불 이후 105년 만에 미국에서 가장 큰 산불 피해다. 하와이만 놓고 보면 미국령이 된 지 1년 뒤인 1960년에 61명의 목숨을 앗아간 쓰나미를 능가하는 하와이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실종자만 수백명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수색이 계속 진행되면서 사망자 수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희생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투입된 탐지견들이 잿더미로 변한 지역 중 3% 정도에서만 수색이 완료된 상태다. 존 펠레티에 경찰국장은 “최종적으로 사망자 숫자를 확인하게 되면 끔찍하고 비극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우이 전체 인구는 약 16만명이며, 라하이나 지역엔 약 1만2000명이 거주하고 있었고, 방문한 관광객도 상당수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에 따르면 라하이나 재건 비용은 55억달러(약 7조3000억원)로 추산된다. 현재 2200개 이상 건물이 파손되고 약 2100에이커(약 8㎦) 이상이 불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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