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박근혜, 대통령 말고 아버지 기념사업이나 했어야"(종합)

피용익 기자I 2017.12.01 11:21:49

회고록서 탄핵사태·적폐청산·개헌 입장 밝혀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고건 전 국무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을) 하시지 말았어야 했다”며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이나 하셨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지난달 30일 발간된 ‘고건 회고록 공인의 길’에 실린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과의 대담에서 “정말 답답했다. 오만, 불통, 무능…”이라고 지적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박근혜정부에서 보수가 스스로 궤멸했다고 진단하면서 “물론 그 당사자(박 전 대통령)가 제일 큰 책임이 있겠지만 그 사람을 뽑고 추동하면서 진영대결에 앞장선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근혜를 검증 안 하고 대통령 후보로 뽑은 거 아니냐”며 “보수진영이 이기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진영대결의 논리이고 결과다. 중도실용을 안 한 거다”라고 분석했다.

고 전 총리는 촛불집회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해 10월30일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나 성역 없는 수사 표명과 국정시스템 혁신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건의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결국 촛불집회가 연이어 일어나고, 국회에서 탄핵안이 발의되고, 가결되지 않았느냐”고 했다.

회고록을 출간한 고건 전 국무총리가 지난 11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정권 평가 기준은 시대적 과제 수행 여부

고 전 총리는 “모든 정권의 평가기준은 ‘그 정권이 시대적 과제를 얼마나 수행하였는가’라고 본다”면서 역대 정부에 대해서도 평가했다.

그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해 “공과 과가 있지만 제일 큰 공은 한국전쟁이 났을 때에 미국을 비롯한 유엔(UN)의 참전을 유도한 것”이라며 “국가건설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한국전쟁을 수행하고 수습한 그 공로는 정말 크다”고 진단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선 “빈곤탈출을 위한 산업화 과정은 마침 그때의 국제정세, 국제경제 질서와 맞아떨어졌다”며 “그것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선 “북방정책은 인정해 줘야 한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와 문민화 등 민주화 개혁,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수습의 공이 있었다고 각각 평가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이후부터는 앞으로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 전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선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간담회에서 현 정부의 시대적 과제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촛불민심이 보여준 특권과 반칙이 없는 제도개혁. 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정치경제 사회의 틀을 찾아야 하는 게 과제”라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제일 큰 문제가 탈산업화에 따른 고용 없는 성장, 일자리 문제, 이게 시대적 과제 가운데 중요하다. 또, 세계 유례없는 초고령사회 진전, 사회안전망 미비로 인한 소득 격차 확대, 이거 해결하는 게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 적폐청산, 특정세력 처벌 목적은 안 돼

고 전 총리는 이날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대해 “촛불민심이 바라는 것은 특권과 반칙이 없는 공정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며 “적폐청산의 목적은 바로 그거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재발하지 않는 제도개혁을 하는 게 근본 목적”이라고 밝혔다.

고 전 총리는 회고록에 실린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과의 대담을 통해서도 적폐청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특정세력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조사해서 처벌할 것은 처벌해야겠지만 기본 목적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의 혁신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건 바로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이다. 거기서 국민화합과 사회통합으로 연결된다.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고 전 총리는 “보수·진보 모두가 새 시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야정협의체 구성 등 환골탈태해야 한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여야정협의체를 빨리 만들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대통령제 수선하고 총선 석폐율제 도입해야

고 전 총리는 개헌과 관련해 대통령제를 수선해서 쓰고, 국회의원 선거에는 ‘석패율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석패율제는 소선거구제 선거의 지역구에서 아깝게 당선되지 못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게 하는 일본식 제도이다.

그는 “우리는 오랫동안 대통령중심제를 학습해왔고, 남북 대립관계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이 내각책임제니 뭐니 새로이 학습을 시작하면 오래 걸린다. 기왕에 대통령제를 학습해오면서 ‘이런 점은 잘못됐구나’ 느꼈던 것을 고치는 것이 좋다”며 “몇십 년 해오던 걸 수선해서 써야지, 새집을 짓는다고 나서면 집 짓다가 만다”고 지적했다.

이원집정부제도에 관해서도 그는 “내치와 외교, 국방을 구분한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어떻게 구분이 되나. 이원집정부제에서 내치와 외치를 구분한다는데 그게 가능한가”라고 반문하며 “꼭 이원집정부제도라고 이름 붙일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학습해오면서 느꼈던 것을 고쳐 나가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 재조정에 대해 “총리는 정치적 지분이 있는 주주형, CEO(최고경영자)형, 집사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대(對)국회 관계에서는 정무형, 내각과의 관계에서는 행정형, 국민과의 관계에서는 통합형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예부터 총리를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 불렀는데 일인지하는 맞지만, 국민과의 관계에서는 만인지중(萬人之中·萬人之衆)이라 생각했다”며 “내 아호가 우민(又民)이다. 관을 그만두면 또다시 백성, 또다시 국민이라는 뜻이다. 총리가 국민 위에 있는 만인지상이 아니라 국민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 국민 속의 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헌이 내각제·이원집정부제로 가는 게 아니라 중임제 등 대통령제를 개선하는 차원이라면 국무총리가 아니라 ‘국무조정총리’로 역할을 제도화해야 한다. 해임건의도 해임제청권으로 헌법에서 바꿔서 해임을 제청하면 대통령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국무위원 임명제청권도 서면으로 제도화하라”고 제안했다.

이어 “제일 중요한 건 총리와 내각의 인사권을 분점 시키는 것이다. 지금은 청와대가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있기에 엄청난 줄서기 인사이다. 각 부처의 국장급까지도 전부 줄서기를 한다”면서 “그러니까 행정 각부의 실·국장급 인사권은 총리와 각부 장관에게 부여해야 한다. 이를 헌법에 넣어도 좋고, 법에 넣어도 좋고 법적으로 해야 작동한다”고 덧붙였다.

고 전 총리는 국무총리 2번,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건 당시 권한대행, 서울시장 2번, 장관 3번, 37세의 나이에 최연소로 전남지사를 역임했다. 그는 2013년에 출간한 서적 ‘국정은 소통이더라’가 2015년 메르스 사태와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을 겪으며 매진되자 언론 대담 내용 등을 추가해 이번 회고록을 펴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