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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는 중동 갈등이 커지면서 국제유가 급등세가 나타날 경우 미국 휘발유 가격을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이 멕시코만 인근에 비축해놓은 SPR의 신규 방출을 승인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거래일 대비 1.97% 오른 배럴당 85.3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직전 당시 80달러 초중반대였다는 점에서 아직 급등 국면에 있는 것은 아니다. NYT는 “중동 분쟁으로 인해 아직 유가가 상승한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미국 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평균 보통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541달러로 나타났다. 아직은 버틸 만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문제는 추후 전망이 무시무시하다는 점이다. CNBC에 따르면 이날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분석 보고서를 통해 이-팔 전쟁으로 인해 최악의 경우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BofA는 일단 이란이 이번 전쟁에 개입할 경우 유가는 120~130달러대로 뛸 것이라고 전망했다. BofA는 “과거 1973년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수출 금지,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국제유가는 세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했다.
더 나아가 만에 하나 이란이 핵심적인 석유 이동 항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면 2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나온 유가 전망 중 가장 높다. NYT는 “미국 정부 인사들은 중동 확전으로 유가가 더 크게 오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 휘발유 가격이 다시 지난해 봄 당시 잠시 닿았던 수준인 갤런당 5달러를 다시 넘어설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SPR 카드를 또 검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SPR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1973년 대미 석유 수출을 중단한 것을 계기로 도입한 시스템이다. 자연 재해, 안보 비상 등으로 석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를 대비해 비축해 놓은 것이다. 통상 전 세계가 10일가량 쓸 수 있는 7억배럴 남짓을 멕시코만 등 여러 곳에 분산해 쌓아놓았다.
다만 이번 조치가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유가 폭등에 대처하고자 SPR을 너무 많이 써버렸기 때문이다. SPR은 말 그대로 ‘비상용’이어서 무한정 쓸 수 없고 언젠가 다시 채워넣어야 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현재 미국 SPR 규모는 3억5127만4000배럴다. 지난 1983년 8월 이후 40년여 만의 최소치다. 팬데믹 직전 6억9000만배럴대였다는 점에서 거의 반토막이 난 것이다. 에너지 애스팩츠의 암리타 센 수석분석가는 “바이든 정부는 SPR을 적극적으로 보충해놓지 않았다”며 “(유가를 안정시킬 만큼의) 총알은 부족한 것 같다”고 전했다.
원유시장에서는 결국 사우디가 움직여야 유가 안정을 기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이를 알고 있다. NYT는 “행정부 인사들은 유가 안정을 위한 노력에는 사우디 같은 주요 산유국들과 논의를 포함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사우디에 원유 증산을 설득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우디는 그동안 미국의 증산 요청을 뿌리치고 꾸준히 감산을 추진해 왔다.
사우디는 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파워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나라다. OPEC+는 사우디, 러시아 외에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나이지리아 등이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