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에 유가 100달러 시대..정유업계 이해득실은?

[이데일리 박민 기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발발에 미국과 유럽의 러시아 경제 제재가 이어지며 국제유가가 종가 기준 배럴당 10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유를 100%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유가의 급등에 따른 국내 산업계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원유를 직접 수입해 판매하고 활용하는 정유업계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반사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나, 지정학적 갈등과 경제 제재 등 위기가 길어지면 결국 손해를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작전을 개시한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러시아명 하리코프) 인근 추기예프 군 공항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작전 전개하겠다고 선포한 지난 24일(현지시간) 국제원유 가격을 형성하는 세계 3대 유종이 모두 출렁였다.

국제유가 벤치마크(기준 지표) 유종으로 꼽는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는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지난 2014년 이후 8년 만에 장중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종가는 99.08달러에 마감했다. 미국 대표 원유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장중 96달러를 돌파, 2014년 8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종가는 92.81달러로 마무리했다.

같은 날 두바이유도 싱가포르거래소에서 배럴당 98.64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100달러 돌파를 목전에 뒀다. 두바이유는 국내 수입 원유의 60%를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값의 기준이 되는 유종이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모든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해 120달러 이상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국내 정유사들은 대표적인 ‘유가급등’ 수혜자로 거론된다. 해외에서 원유를 수입해와 국내에서 정제해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정유사는 운영 특성상 일정량의 원유를 비축해두는데, 유가가 오르면 비축해둔 원유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재고 평가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국내로 수입하는 원유는 2-3개월 전에 구매를 확정해 들여오는 만큼 현재 도입에는 차질이 없다”며 “특히 3-4개월치 판매 물량을 비축해두는 만큼 국제유가가 오르면 단기적으로는 정유사에게 재고 관련 이익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는 고유가가 장기화하는 경우다.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경우 석유제품 가격 인상으로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석유 소비 감소로 정제마진이 줄면 수익성이 나빠진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수급 차질이 발생하면 천연가스 대체재인 ‘경유’ 수요가 늘어 당분간은 마진 하락을 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가가 길어질수록 납사(나프타)를 주 원료로 사용하는 석유화학업계도 피해가 불가피하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추출되는 나프타는 각종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원료로 쓰인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 대부분은 나프타를 수입해서 사용하는데 국제유가가 오르면 나프타 가격이 상승해 원가부담이 증가한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오르면 석유화학사 입장에서는 비용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유가 변동에 대비해 연간단위 물량계약을 체결해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고유가 기조가 장기화할 경우 이 효과도 미미해진다”고 말했다. 무협협회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국내로 수입하는 품목 중 가장 비중이 큰 품목이 나프타로 전체 25.3%를 차지한다.

정유·석유화학업계는 유가 급등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이란산 원유’ 수입을 꼽고 있다. 애초 우리나라는 이란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해 왔으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가 핵 합의에서 탈퇴하면서 이후 수입이 금지됐다. 그러다 최근 이란 핵합의 복원 타결이 임박하면서 이란산 원유가 시장에 풀릴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이란산 원유는 제재 해제만으로도 시장에 공급량 확대라는 시그널을 줘 가파른 유가 상승을 완화시킬수 있을 것”이라며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적절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