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그 시절엔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기 위해선 연합고사를 보고 절대평가 점수를 넘겨야 했다. 앞 친구들이 떠든 것을 오인한 물리 선생의 차별적 발언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아 있다.
당시 나는 이른바 대한민국 실업계 고등학교 진학생이었다. 성적 상위 10~15% 학생들까지만 지원할 수 있는 ‘여상’에 미리 붙고 난 후였다. 한 학급에 인문계, 실업계 지원 학생들이 앞뒤로 나눠 앉았던 터라, 지레짐작으로 뒷자리 실업계 진학 준비생들에게 화살이 향했던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 부당한 편견과 배제, 한국 사회에서의 미세한 차별 신호를 그렇게 미리 직감했다. 형편이 좋지 못했던 나와 사정이 비슷한 친구들은 친척이나 주변 이웃들로부터 “빨리 취업해 돈 벌어서 부모님 도와야지” 같은 말을 줄곧 듣고 자랐다. 대학 진학은 생각조차 못했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또 다른 선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더라면, 제대로 된 정책적 지원이나 후원 제도가 있었다면 달라진 인생을 살고 있을까.
책 ‘친애하는 슐츠씨’(어크로스)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결핍의 덫’(scarcity trap)이라는 개념을 꺼내 든다. 사람들은 돈이나 시간 등의 자원이 부족할 경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는 이론이다. 지능의 문제도, 게으름의 문제도 아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덫’이라는 것이다. 책은 인류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배제가 얼마나 많은 무지에서 비롯되는지 이야기한다. .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3주째다. 그런데 연일 서로 헐뜯기에 바쁘다. 여야 간 극한 정쟁으로 ‘개점휴업’ 상태다. 협상과 합의, 타협을 정치의 기본이 아닌 ‘패배’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역시나 ‘민생’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여야 간 힘겨루기에 바쁘다. 야권은 채상병·김건희여사·대북송금(이상 민주당)·한동훈(조국혁신당) 특검법을 발의했고, 국민의힘도 김정숙 여사 특검법을 내놨다. 말그대로 특검법 정치다. 총선 때 떠받들던 가난한 서민, 자영업자, 약자와 소외 계층은 국회 시작부터 철저히 배제됐다. 참사 발생 550여일 만에 통과된 이태원 특별법이나, 전국장애인차별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집회’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 없이 혐오만이 남았다. 갈등 국면마다 ‘강 대 강’으로 치달아 해결책 역시 보이지 않는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최근 출간한 새책 ‘숙론’(김영사)에서 가장 토론을 못하는 집단으로 국회를 꼽았다. 토론 대신 서로 말꼬투리 잡기에만 급급할 뿐, 제 역할은 하지 못하고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낡은 관습을 정리하고 새 시대의 기준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국회가 ‘다양성’이란 세계적 화두 앞에 눈과 귀를 닫고 있는 형국이다.
장애인의 차별 철폐를 위한 수십년 전장연의 외침을 외면하는 정치로부터, 세월호 아이들, 이태원 청년의 참사 원인을 규명하는 일조차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킨 그 정치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의 말에 따르면 차별과 혐오, 편견을 지탱하는 힘은 무지다. “모든 차별과 편견은 서로 통한다. 인위적 노력 없이는 없어지지도 않는다”. 정치란,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을 설득해 국민의 삶을 지켜내는 일인 것이다. 정치는 ‘무지’하지 않을 ‘의무’ 역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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