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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의 시작 5분만에 민주당 지도부와의 회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22일(현지시간) 민주당과 2조달러(2300억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다.
회의 중단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에 대해 조사하는 동안 민주당과 협력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이 ‘러시아 게이트’에 대한 조사를 당장 중단하지 않으면 협력은 없다는 압박이다. 내년 미국 대선까지 미국 정치 시스템이 마비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가 폭발한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거론한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발언 때문이라고 CNN은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날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업가 시절 금융거래 기록을 미국 의회에 제출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측의 요청을 기각했다.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와 금융위는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캠프와 러시아정부와의 유착 의혹을 소명하기 위해 은행 9곳에 기록 제출을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는 자신의 사생활이라며 도이체방크와 캐피탈원 등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의회 조사 권한을 법으로 보장돼 있다”고 밝혔다.
이 결정에 대해 펠로시 의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은폐(cover-up)를 통해 사법 방해를 하고 있다”며 “이는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는 범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회의 시작 직전 이 인터뷰를 본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흥분하며 백악관 직원들에게 로즈가든 기자회견을 준비시켰다는 것이다.
당초 회의 시간보다 15분 늦게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 등 민주당 의원들에게 “당신들은 조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그걸 끝내야 대화를 할 수 있다. 회의는 끝났다”고 말한 직후 곧바로 자리를 떴다.
이날 회의는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이 지난달 합의한 미국 내 노후된 철도, 교통, 통신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25년간 2조달러(약 2300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나는 인프라를 원한다, 민주당보다 더 원한다”면서도 민주당을 향해 “이 상황에서 내가 인프라 예산을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지 않느냐”이라고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약값 인하 법안도 논의를 거부했다고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행동이 인프라 투자 무산의 책임을 민주당에 돌리기 위한 일종의 보유주기식 ‘쇼잉’(Showing)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예산이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이미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해서 백악관과 민주당 모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 데다가 공화당 내에서는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펠로시 의장은 협상 결렬 직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위대한 도전에 필적할 수 없다”면서 고 밝힌 것 역시 2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에 대한 책임 공방을 트럼프 대통령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WSJ은 정치 갈등으로 다음 대선이 열리는 18개월 동안 중요한 법안이 논의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진단했다. 당장 미국 의회가 연방정부 부채 한도 상향 조정을 하지 않을 경우, 올해 회계연도가 끝나는 9월 30일 정부 재정이 고갈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경우 지난해 있었던 ‘셧다운’(연방정부의 일시적인 업무중단)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과 일하기 거부하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백악관 관계자들은 예산안 마련, 미국·캐나다·멕시코 협정(USMCA) 비준 등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