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꼭 봐야돼” 2024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알쓸공소]

장병호 기자I 2024.12.27 13:00:00

박세은·김기민 출연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고선웅 각색·연출 서울시극단 연극 '퉁소소리'
천선란 소설 원작 서울예술단 '천 개의 파랑'
국립창극단 '작은 창극' 중 '덴동어미 화전가'

‘알쓸공소’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연 소식’의 줄임말입니다. 공연과 관련해 여러분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혹은 재밌는 소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2024년도 이제 1주일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 여러분은 어떤 ‘관극’ 생활을 하셨나요? 대중문화는 이맘때쯤 ‘올해의 영화’, ‘올해의 앨범’ 등 순위를 매긴 리스트가 나오는데요. 공연은 같은 작품도 관람할 때마다 감상이 달라지고, 관객마다 감상도 제각각 달라서 객관적인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올해도 개인적으로 꼭 기억하고 싶은 공연을 정리해봤습니다.

◇2024년 가장 아름다웠던 공연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니키야 역 박세은, 솔로르 역 김기민의 공연 장면. (사진=국립발레단)
2024년 가장 아름다웠던 공연을 꼽으라면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를 고르고 싶습니다. 특히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최고무용수) 박세은과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이 출연했던 공연이 그랬습니다.

세계 최고의 발레단에서 활약 중인 두 사람이 국내 무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건 무려 14년 만이었는데요. 이전에도 두 무용수가 각각 출연한 공연을 본 적 있었기에 실력에 대한 의심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오로지 몸짓으로만 전달하는 감정의 파도는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하는 공연을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24년 가장 희망찼던 공연

연극 ‘퉁소소리’의 한 장면. (사진=서울시극단)
2024년 가장 희망찼던 공연으로는 서울시극단의 ‘퉁소소리’를 꼽고 싶습니다. 서울시극단 단장인 연출가 겸 극작가 고선웅이 한국 고전소설 ‘최척전’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배경으로 전쟁으로 중국, 일본, 베트남 등으로 뿔뿔히 헤어진 가족이 우연처럼 재회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대서사극입니다.

고전을 원작으로 하고 간결한 무대 구성 등에서 고선웅 연출의 대표작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는데요. 다만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전혀 달랐습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비극적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관객의 눈물을 자극했다면, ‘퉁소소리’는 그럼에도 운명과 맞서며 묵묵히 살아가는 인간의 의지가 희망처럼 다가왔습니다. 쌍둥이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두 작품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2024년 가장 필요한 화두를 던진 공연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의 한 장면. (사진=서울예술단)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전한 공연으로는 서울예술단 ‘천 개의 파랑’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천선란 작가의 동명 SF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비슷한 시기 연극으로 제작되기도 했는데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학습 능력을 담은 칩을 잘못 삽입하게 된 로봇 콜리가 부상을 입은 말 투데이, 그리고 연재와 은혜 자매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로봇과 동물, 그리고 환경 등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다뤘는데요. 특히 로봇 콜리가 투데이와 함께 마지막 경주에 나서는 장면은 마음이 짠할 정도로 여운이 길었습니다. 경쟁에만 매달리며 성공만을 쫓는 지금, 때로는 느리게 달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돌아보게 만드는 공연이었습니다. 때마침 내년 2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재공연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어떻게 완성도를 높여서 다시 무대에 오를지 궁금합니다.

◇2024년 끄트머리에 만난, 사심으로 언급하고 싶은 공연

국립창극단 ‘작은 창극 시리즈’ 중 ‘덴동어미 화전가’의 한 장면. (사진=국립극장)
끝으로 2024년 정말 사심으로 꼭 언급하고 싶은 공연 한 편을 추가합니다. 국립창극단이 최근 ‘작은 창극 이야기’로 선보였던 ‘덴동어미 이야기’입니다. 함께 공연한 ‘옹처’로 B급 코미디 창극으로 즐겁게 관람했는데요. ‘덴동어미 화전가’의 여운이 조금 더 깊이 남았습니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쓴 내방가사를 원작으로 하는 창극인데요.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남편을 잃고, 홀로 키우던 아기마저 집에 난 불로 화상을 입게 되는 안타까운 일을 겪은 여인 ‘덴동어미’가 주인공입니다.

작품은 덴동어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젊은 과부를 만난 뒤 자신의 인생사를 들려주면서 그려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비극과 절망으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이 마음 깊이 와 닿았습니다. 덴동어미의 삶은 젊은 과부를 절망에서 끌어올리죠. 기존 창극과는 또 다른 풍성한 음악과 흥미로운 이야기로 눈과 귀가 즐거운 소품이었습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지만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가 있기에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여러 가지 혼란 속에서 2024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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