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월 혹한이 밀어닥친 서울 거리는 암울했다. 2개월 전 터진 외환위기(IMF 금융위기)의 충격은 엄청났다. 한강의 기적, 88서울올림픽에 이어 승승장구하는 듯 하던 우리나라가 하루 아침에 쓰러질 것 같은 분위기로 돌변했다. 유동성 부족 운운하는 경제적인 측면만 문제가 아니었다. 계속 큰소리만 친 우리 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분노가 겹쳐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외환위기 영향으로 중국에서 최악의 사태를 겪고 온 나도 마찬가지. 하루 하루 버티기도 힘들었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동서남북 하늘과 땅 6면이 모두 막혀 버린 듯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심정으로 길을 찾고 있던 내게 서광이 비쳤다. 귀국 3개월!
지금도 자주 만나는 고교 친구가 어느 날 뜬금없이 헌칠한 키의 젊은이를 소개했다. 친구 사무실이 테헤란로 선릉역 근처여서 매일 그 친구 사무실에 갈 때였다. 그 젊은이가 좋은 사업 계획이 있으니 그 젊은이와 잘해보라는 것이다. 컴퓨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 친구는 자신은 자신은 이해가 되지 않는 사업 내용이니 잘해보라고 했다. 거의 독점적인 화학 원자재를 수입해 오래된 거래처인 대기업에 판매하고 있는 그 친구는 다른 사업에는 별 관심이 없을 때였다. 나는 1986년 아시안게임 때부터 컴퓨터로 기사를 송고했었기에 그 친구에 비해서는 컴퓨터에 익숙한 편이었다. 매일 그 젊은이와 그 젊은이가 소개한 후배들을 만났다.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는 기술 개발 사업이지만 엄청난 사업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서기 시작했다.
‘자연어 검색 엔진 개발!’ 그 젊은이와 그 후배들이 개발하려는 사업 내용이었다. 지금도 구체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업 내용에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중국 최고의 명문 대학 도서관에서 그 검색 엔진 기술을 구입하려 한다는 기술이라고 하니 말이다. 중국뿐 만아니라 전 세계에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초등학교 학생도 자연어 검색에 익숙해 있지만 그 당시는 생소한 단어였다. 그 젊은이들이 내게 설명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다.
우선 자연어란 말이 무슨 뜻인가 보자. 필요에 의해 일부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인공 언어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평소에 쓰는 말이다. 문장으로 된 평소의 말을 입력하면 답변을 찾아 낼 수 있는 엔진, 즉 검색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2016년 우리나라 인구는 몇 명인가?”라는 문장을 컴퓨터 검색 창에 입력해서 답변을 찾아낸다. 인터넷의 선두주자였던 다음 포털의 자리를 차지해 공룡이 되어버린 네이버 포털이 자랑하는 기술이 바로 이 자연어 검색 엔진이라는 것.
그런데 내가 만난 젊은이들은 한글뿐만 아니라 한자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검색하기가 가장 어렵다는 중동의 모든 국가에도 적용할 수 기발한 검색엔진을 개발하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무궁무진한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개발 완료 직전에 있는 한자 검색엔진의 경우 중국에 진출해 사업을 크게 확장하고 있는 굴지의 컴퓨터 회사가 60억 원에 구입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그 젊은이들 소개로 그 컴퓨터 회사 회장의 처남을 소개 받았다. 그들이 내게 얘기한 말이 모두 사실이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의 동생까지 소개 받기도 했다. 이 기술을 마무리하기 위해 반년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때까지 법인을 설립해 기술 개발이 끝날 때가지 운영비가 필요하다는 것. 그때 마침 그런 사업이라면 당장 투자하겠다는 대학 선배가 나섰다. 내가 좋은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하면 종자돈을 밀어주려 했다는 선배다. 투자 의사를 확인한 후 선배와 헤어지고 나니 눈물이 고였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으랏차차 차차차! <다음회에 계속>
중국전문가·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