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강종구기자] 한국은행이 "놀랍게도" 콜금리 목표를 0.25%포인트 인하했습니다. 놀랍다고 표현한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상을 깬 결정이어서 그런지 걱정하는 소리도 많습니다.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과 함께 심지어 "한은이 물가를 포기하다니 간판 내려라"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걱정이 안될 리 없습니다. 경기만큼이나 물가도 걱정이구요. 경제문제도 콜금리 인하로 해결될 만큼 간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내려진 결정입니다. 이제 금리인하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로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한국은행에 출입하는 강종구 기자가 전합니다.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결정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길 가능성이 적은 게임에 돈을 건 것과 같은 도박일지도 모릅니다. 금리인하의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은도 그동안 금리인하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또한 최근 물가가 급등해 상황 자체도 금리를 내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경제계는 "한은은 용감했다"며 칭찬했고 정부도 "두손 들어 환영한다"고 반색했습니다. 물론 부동산투기를 재연할 수 있다거나 국내 유입된 외국자본은 물론 국내자본마저 저금리를 피해 해외로 이탈할 것이란 부작용에 대한 걱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걱정인 것은 콜금리를 내렸는데도 아무런 효과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박 승 한은 총재마저 "콜금리 0.25%포인트 내렸다고 해서 내수를 진작하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겠습니까.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 근본 이유는 금리가 비싸서가 아니니까 말이지요.
아시다시피 기업 부채비율은 사상 최저수준이고 미국이나 일본 등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준입니다. 대기업들은 엄청난 현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하지 않구요. 부자들은 돈이 있어도 소비를 하지 않거나 소비를 하더라도 국내가 아니라 나라 밖에서 쓰고 있습니다.
시중에는 400조에 가까운 단기부동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요. 갈 곳이 없다 보니 금융권에 몰리고 채권투자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결국 은행 금리와 채권금리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돈이 없고 금리가 비싸서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계는 엄청난 부채부담 때문에 소득이 생기면 그대로 원리금을 갚는데 쓰거나 실업자 신세인 자식을 위해 저축을 합니다. 중소기업은 장사도 잘 되지 않는데다 은행에서 돈을 꾸기도 어려워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콜금리가 인하되면 원리금 부담이 많은 가계와 중소기업에는 다소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은행 예금이나 투신사 MMF같은 저금리 상품에 돈을 맡겨 두고 있는 기업들도 금리가 더 낮아질테니 "에라 투자나 하자"고 살 수도 있습니다.
부디 그러기를 바라지만 소폭 금리인하로 이런 문제들이 한꺼번에 해결되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입니다. 기본적으로 소득이 늘어야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고, 고용이 늘어야 소득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또 투자가 늘어야 고용이 늘어나구요. 어느정도 확실한 수익이 보여야 투자가 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기가 살아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하구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불안요인들이 제거돼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세계 IT경기가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환경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당장 하반기 경제성장세 둔화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고 물가는 걷잡을 수 없게 뛰고 있습니다.
나라밖이 그럴진대 나라안이 시끄러우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겠습니까. 여당과 야당은 "감세해야 한다" "아니다 재정지출이 낫다"고 싸우느라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있습니다. 중소기업 노조는 월급을 반납해야 할 지경인데 돈 많은 대기업 노조는 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행정수도 이전은 마치 정부 여당과 야당이 서로 싸우기 위해 만들어낸 아이디어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박 총재 말을 하나만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고유가가 지속되는데도 정부와 한은이 별도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성장세는 내년 상반기까지도 내려갈 것이다. 정부와 한은은 물론 기업과 노조가 모두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금리인하는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별로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전격적인 금리인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은행의 선택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합니다. 수출증가율은 연말에 한자릿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수출이 둔화되는 빈 자리를 내수가 메워주지 못하면 성장률 급락은 불가피합니다.
박 총재의 "분위기론"은 "금리로 내수를 살리겠다"가 아니라 "우리가 작은 힘을 보탤테니 모두가 나서달라"는 뜻입니다. 정부는 기업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기업은 긴 안목으로 투자와 고용을 늘려달라는 겁니다. 가계에는 이자부담을 줄여줄테니 저축을 조금 덜하더라도 지갑을 열어달라는 뜻입니다.
거시적인 정책공조도 필요합니다. 콜금리를 내리면 물가불안은 더욱 커집니다. 다행히(?) 내수가 죽어서 물가가 덜 오르는 면이 있지만 금리인하는 아무래도 물가안정에는 악재입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공공요금 인상을 자제해 서비스물가 상승을 억제해야 합니다. 수출만을 위한 고환율 정책에서 한발 물러나 국제유가와 원자재값 상승이 국내 물가를 위협하는 강도를 줄여줘야 할 것입니다.
박수를 치려면 왼손과 오른손이 맞아야 합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콜금리를 내렸으니 경제가 조금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버려야 합니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과 노조를 비롯해 국민 모두가 손발이 맞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콜금리 인하는 오히려 경제위기를 키우는 한국은행 최대의 "패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가가 단기간에 급락할 것 같지 않답니다. 그럼 물가도 계속 오르겠군요. 그런데 정부와 한은의 정책이 따로 놀고, 정치권이 싸움만 하고 혼란만 일으키고, 정부와 기업이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한다면 어떻게 경제가 살겠습니까.
그렇게 내년초가 되고 수출은 더 이상 늘지 않고, 물가는 폭등하고, 내수는 여전히 마이너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로만 듣던 그 엄청난 위기,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오르고 경제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그때 우리는 "2004년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내려서 나라를 망하게 했다"고 욕하겠습니까. 누워서 침뱉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