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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애플 업고 재역전?…도시바 인수전 막판 혼전

김형욱 기자I 2017.09.01 11:41:27

도시바, 약점 활용 배짱부리는 WD에 ‘분개’
3곳 동시협상…단순 협상 카드? 실제 검토?
日 협상 장기화에 삼성전자 격차 확대 우려

AFP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SK하이닉스(000660)-베인캐피탈 진영이 도시바 인수전에서 재역전할 수 있을까.

도시바가 지난달 31일 이사회에서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 매각과 관련해 유력 후보인 미국 반도체 회사 웨스턴디지털(WD)-미 헤지펀드 KKR 진영 외에 SK하이닉스측과 대만 훙하이정밀공업(폭스콘)과의 협상도 이어가기로 했다. 역전에 재역전 가능성까지 생기며 막판 혼전 양상이 된 것이다. 도시바가 사실상 우선협상 중인 WD를 불신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 SK하이닉스·폭스콘 진영이 내놓은 막판 카드가 시간에 쫓기는 도시바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도시바, 약점 활용 배짱부리는 WD에 ‘분개’

다 된 줄로만 알았던 도시바와 WD의 반도체 매각 협상이 길어지고 있는 건 WD와 도시바의 갈등 때문이다. WD가 시간에 쫓기는 도시바의 약점을 잡은 듯 강경하게 나서자 도시바가 이에 분개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쓰나카와 사토시(綱川智) 도시바 사장은 28일부터 시작한 스티브 미리건 WD 최고경영자(CEO)와의 회담에서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WD측이 협상에선 도시바측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정작 보내온 계약서에는 이 부분이 반영되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바측 협상 실무자도 “말과는 다르지 않나”며 분개하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쓰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 AFP


이번 매각이 회사 전체의 존폐가 걸린 도시바로선 시간에 쫓기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론 WD측에 특혜를 줘 왔다. 쓰나카와 사장은 지난달 중순 돌연 앞선 6월 말 SK하이닉스 진영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정했다는 발표를 뒤집고 WD와 먼저 협상하겠다고 결정했다. 전날 이사회의 초점도 원래는 WD를 독점적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여부에 맞춰졌다.

WD가 도시바의 약점을 잡고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협상을 가져가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간에 쫓기는 건 도시바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채무초과 상태에 빠져 있는 도시바는 2018년 3월 이전에 모든 매각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하면 상장폐지가 유력하다. 인수합병(M&A) 절차 중 하나인 중국 독점금지법 심사에 최소 6개월이 걸리는 걸 고려하면 지금 본계약을 해도 시간 내 모든 절차를 마무리지을 수 있단 보장이 없다. 또 당장 9월 말이면 도시바와 채권 은행 간 자금융통 계약 갱신 기한이 다가온다. 이대로면 계약 연장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도시바와 WD 협상의 남은 쟁점은 WD의 출자비율 상한 한도와 그 시기다. 즉, WD가 언제부터 도시바메모리에 대한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느냐 여부다. 양측은 독점금지법 심사를 위해 WD가 당장은 의결권 없는 신주인수권부사채(CB) 형태로 1500억엔(약 1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이후 지분 매수를 통해 지분율을 15% 가량 확보한다는 데는 동의했다. 도시바메모리가 3년 후 기업공개(IPO)한다는 데까지도 의견 일치를 봤다. 그러나 도시바는 상장 후 제삼자에게 경영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IPO 전후 그 의결권 있는 지분을 33.3%까지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도시바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도시바는 독점금지법 심사의 확실한 통과를 위해선 WD가 10년 동안은 지분율을 15% 이내로 묶어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3곳 동시협상…단순 협상 카드? 실제 검토?

SK하이닉스 관점에선 도시바의 협상 연장에 단순한 WD와의 협상 카드인지 유의미한 검토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SK하이닉스의 동맹은 도시바-WD 불화가 불거지기 시작한 29일 애플을 동맹에 합류시키겠다는 제안을 했다. 도시바로선 최대 고객사인 애플의 합류가 매력적일 수 있다. 반도체 경쟁국으로 꼽히는 한국의 이미지도 희석하는 효과가 있다. 폭스콘이 일본 투자업계 큰손 소프트뱅크와 손잡겠다는 안을 내놓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폭스콘은 여기에 도시바메모리 매각가인 2조엔(20조원)에 웃돈을 얹을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

AFP


도시바 안팎에선 일단 베인캐피탈(SK하이닉스) 측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도시바의 한 임원은 닛케이에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날 이사회에서도 그래도 WD와 우선협상해야 한다는 측과 새 제안도 더 비교 검토해봐야 한다는 측이 맞붙었고 결국 후자의 우세로 결론났다.

그러나 도시바가 WD 대신 SK하이닉스와 전격적인 계약을 맺는 데는 많은 현실적 어려움이 따른다. WD가 도시바와 지분 50대 50으로 일본 요카이치(四日) 반도체 공장 공동 운영한다는 이유로 타사 매각을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신청을 낸 상태이기 때문이다. 도시바와 SK하이닉스측 협상이 난항을 겪은 것도 이 때문이다. 법적으로 겨뤄볼 여지는 있지만 도시바에는 시간이 없다. 닛케이는 “강경한 협상 태세를 굽히지 않고 있는 WD를 흔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닛케이 “시간 허비하는 동안 삼성전자와 격차”

한편 낸드플래시 부문 세계 2위의 도시바 반도체 매각이 지연되면 될수록 1위 삼성전자(005930)에는 유리한 국면이 될 전망이다. 닛케이는 삼성전자가 최근 중국 반도체공자아 증설에 8조원을 투자키로 한 데 대해 “(도시바가)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며 그 격차가 벌어지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내 인력 유출도 이어지는 상황”이라며 “도시바 (반도체)의 약화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올 들어 삼성전자와 도시바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시장조사업체 IHS마르키트에 따르면 올 1분기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6.7%, 도시바와 WD가 각각 17.2%, 15.5%로 그 격차가 벌어졌다. 지난해 연간으론 삼성전자가 35.2%, 도시바와 WD가 19.3%, 15.5% 순이었다. 도시바 인수를 노리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1%에서 11.4%로 오르며 미국 마이크론(12.0%→11.1%)를 제치고 4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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