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美 병사는 어떻게 정부 1급비밀을 유출했을까?

장영은 기자I 2023.04.14 16:12:04

정부 기밀 유출 혐의로 주방위군 소속 병사 체포
국방부 당국자들 "1급 비밀 접근권 보유자 수천명"
기밀문건 관리 취약성·정보 공유 관행 문제점 드러내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어떻게 21세의 주방위군(national guardsman) 병사가 기밀 문건에 접근할 수 있었나?”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파장을 불러온 미국 정부 기밀문건 유출 사건의 주범이 20대 초반의 주방위군 소속 일개 사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같은 의문이 제기됐다.

미국 정부 기밀 문서 유출 용의잘 지목된 매사추세츠 주방위군 소속 잭 테세이라. (사진= AFP)


◇“美 1급 비밀 접근권한 수천명”…민간인도 가능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미 정부 문건 유출 용의자인 매사추세츠 주방위군 정보부대 소속 잭 테이세이라의 극적인 체포는 정부가 최고 기밀로 분류한 국가 안보 문서를 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지나치게 많다는 문제점을 폭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9년 9월 주방위군에 입대한 테세이라는 올해 21세로 오티스 공군기지 102 정보부대에서 군사 통신망 관리를 담당해 왔다. 지난해 10월부터 소셜미디어 플랫폼 ‘디스코드’의 비공개 채팅방을 통해 수백쪽 분량의 미 정부 문건을 유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1급 비밀(top secret)은 말 그대로 국가 안보와 전략적인 측면에서 최고 수준의 보안을 유지해야 할 테지만, 미 국방부 당국자들은 1급 비밀에 대한 접근권을 가진 사람이 수천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선 600명이 넘는 군 장성을 비롯해 그들의 부관, 국방부 대령급 장교, 해군 함장은 물론 하급 장교 상당수도 1급 비밀에 취급할 수 있다. 심지어 이번 사건을 통해 정보부대 소속 일부 사병들조차 1급 비밀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야말로 광범위한 사람들이 국방부와 여러 정보기관이 제공하는 일일 브리핑과 상황지도, 각종 분석 보고서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수집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2급 비밀(secret)’의 경우 취급권한을 지닌 사람은 더 많다. 미 국방부나 국가안보기관 직원의 대부분은 물론 민간군사업체와 싱크탱크 애널리스트들도 2급 비밀을 열람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NYT는 “이번 사건은 1급 비밀이 실제로 비밀인지, 국가안보기구들이 민감한 자료가 널리 퍼지도록 방치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해 폭넓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 미 국방부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담당했던 에블린 파르카스는 “너무 많은 사람이 그들이 알 필요가 없는 기밀 정보에 대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사진= AFP)


◇정보 관리 취약성 드러내…문서 인쇄했을 것으로 추정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당국자들은 이번 사건이 2013년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기밀문서 폭로 사건 이후에도 미국 정부가 기밀 문건을 다루는 데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스노든은 2013년 6월 NSA가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 수집한 내용을 담은 기밀문서를 언론에 폭로했다. 일반 시민은 물론 세계 정상급 인사의 통화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스노든은 폭로 이후 러시아로 망명했다.

스노든 사건 이후 미국 정부에서는 일급 브리핑을 저장하고 있는 특수정보시설(SCIF)에 대한 전자적인 접근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사진 촬영·녹화·녹음이 가능한 전자 기기를 반입할 수 없다.

그럼에도 테세이라가 기밀문건을 온라인에 문서 형태로 유출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문건을 출력하는 방식으로 빼돌렸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글렌 거스텔 전 미 국가안보국(NSA) 법률 자문은 “계급이 낮은데다 (전군 차원에서 보면) 변두리라고 볼 수 있는 공군 주방위군 사병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비밀 중 일부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었는지는 분명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당국자를 인용해 테이세라가 범세계 정보 통신 체계(JWIC)로 알려진 국방부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군사 기밀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9·11 테러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보유에 대한 첩보 실패 이후 미 정부의 정보 처리 방식에 변화가 생긴 점도 이번 유출 사태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두 사건 이후 미 정보기관들은 그들의 정보 출처와 신뢰성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공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거스텔은 “이러한 변경은 타당한 이유로 이뤄졌지만 너무 지나쳤다”며 “우리는 이 정보를 공유하기만 했어도 무언가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쉽고 편리하게 (기밀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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