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이경탑기자] 우리금융(053000)그룹 계열 우리카드 직원의 400억원 횡령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어느덧 보름이 되어 갑니다. 당초 우리금융과 감독당국이 사고에 따른 조속한 문책성 인사를 언급했지만 아직까지 책임을 묻는 인사는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금융과 감독당국내 고위책임자들이 이 문제를 서로 미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부 이경탑 기자가 전합니다.
"나보다 우리를 더 생각하는 당신을 위해, 마음으로 쓰는 카드"
최근 400억원의 횡령 사고를 일으킨 우리카드의 광고 카피입니다.
우리카드 직원의 400억원 횡령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벌써 보름이 되어 갑니다. 그러나 이 사고와 관련한 문책성 인사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설마 광고카피처럼 책임 역시 "나" 보다는 "우리"를 더 생각, 서로 떼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경찰 수사에 따르면, 우리은행 카드사업본부(옛 우리카드) 직원 2명은 회사 돈 400억원을 빼돌려 중국으로 도주하기 전까지 서울 강남의 고급룸 살롱에서 3개월만에 8000여만원을 술값으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 강원도 정선 카지노클럽을 들락거리며 4억6000여만원을 흘린데 이어 1억원 상당의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들은 또 선물·옵션 투자를 통해 채 100일도 안되는 기간 동안 350여억원을 날렸습니다. 하루평균 3억9000여만원을 날린 셈입니다. 투자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를 하다 일이 커진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작심하고 사기극을 벌였다고 단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100여일 동안 회사자금을 제 주머니 돈처럼 마음대로 빼내 쓸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해 12월말부터 지난 3월말까지 5차례에 걸쳐 46억~200억원씩의 자금이 아무 이유없이 빠져나가도 회사측은 이를 까맣게 몰랐다고 하니 우리은행과의 합병을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였다손 치더라도 명색이 금융기관의 자금관리가 동네 구멍가게만도 못했다는 점에서는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당초 지난 6일 이번 사고가 첫 공개되면서 우리금융과 감독당국내 책임자급에 대한 문책인사가 곧바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실제 사고 직후 우리금융그룹의 관련 임원 몇 명은 밤잠을 설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열흘이 넘어서도록 이 사건과 관련한 문책 인사는 중국으로 도주한 직원 2명의 행방 마냥 묘연하기만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책임 주체도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사고 당시 합병직전의 우리카드 CEO가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는 입장에서 최근에는 이번 사고의 근본원인이 시스템적 미비에서 비롯됐고, 이는 곧 지난 2002년 우리카드 분사 결정에서 시작됐다는 이유에서 우리카드를 분리키로 한 옛 경영진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사고액 400억원은 우리카드의 `분사-합병`에 따라 발생한 지난 2년1개월 동안의 손실에 비해서는 `껌값`에 불과하다는 얘기와 함께 `분사원죄론`에 힘이 쏠리고 있습니다.
우리카드는 지난 2002년 2월 총자산 5조4000여억원으로 우리은행에서 분사했습니다. 지난해말 총자산은 3조8000억원으로 2년만에 2조원 가까이 줄었습니다. 우리금융그룹으로부터 총 1조6400억원의 유상증자라는 긴급 수혈을 받았는데도 누적손실액은 1조5000여억원에 달합니다. 분사원죄론을 지적할 수 있을 정도의 초라한 성적표입니다.
하지만 우리카드 분사 결정에 참가했던 경영진들은 이미 회사를 대부분 떠나고 없습니다. 우리금융그룹의 1기 경영진 중 윤병철 전 회장과 전광우 부회장이 지금은 모두 우리금융그룹을 떠나 있어 이들에게 책임을 묻을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민유성 부회장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분사 이후 작년 10월까지 우리카드의 CEO였던 황석희 전 사장도 지금은 회사를 떠났습니다. 황 사장에 뒤이어 우리카드 CEO에 올랐던 민종구 전 사장은 지난달 임원인사에서 우리은행 수석부행장으로 승진했습니다. 뒤늦게 우리카드 CEO에 올라 재수없게(?) 재임중 횡령사고가 터진 터라 민 수석부행장이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미 회사를 떠난 옛 경영진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한편 우리금융 그룹 일각에서는 지난해말 우리카드 실사 담당 임원의 책임론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사를 제대로 했더라만 이번 사고를 미리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입니다.
감독당국도 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카드가 회사 사정상 내부감시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할 여력이 없었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카드에게 금융기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버젓이 문을 열고 영업하도록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카드 홈페이지에서 날아다니는 광고카피를 보면서 협력이나 좋은 일에서는 "우리"가 좋지만 책임을 물을 때 `우리"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칫 그 누구의 책임도 물을 수 없는 "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칭 검투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황영기 회장의 칼날이 누구의 가슴을 겨눌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설마 이미 빼 든 칼로 호박도 못 베지는 않겠지요. 우리금융그룹에 새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긴급 수혈된 황 회장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기엔 아직 시기적으로 너무 조급한 단정이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