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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실손보험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4세대 실손보험’을 내년 7월 1일부터 출시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단체보험 및 공제계약 포함)는 3800만명에 이른다. 그런데 전체 가입자 중 93.2%(무사고자 포함)는 자신이 낸 보험금(평균 연 62만원)보다도 적은 보장을 받고 있는 반면 의료이용량이 많은 상위 10%가 가지고 간 보험금은 연 354만원에 이른다. 가입자 전체 수로 치면 단 3.4%가 전체 실손보험금의 56.8%를 가지고 가는 셈이다. 심지어 최근 1년간 18개 병원에서 3062번의 외래진료를 받으면서 낸 보험료(151만원)의 20배가 넘는 3244만원의 보험금을 타간 사람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보험사들은 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물론, 실손보험의 판매를 중단했다. 기존 실손보험 판매사 30곳 중 2019년 말 기준 판매를 중단한 회사는 11개에 달한다. 그나마 판매를 하고 있는 회사들도 가입 심사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에 당국은 실손보험이 지속하려면 보험비를 많이 타가는 사람들의 보험료 부담을 높이고, 보험비를 적게 타거나 잘 쓰지 않는 사람들의 보험료 부담을 낮추는 방안으로 ‘4세대 실손보험’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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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 실손보험은 보험료 상승의 주요 원인인 비급여 영역을 ‘특약’으로 분류한다. 3세대까지 특약은 도수치료·증식·체외충격파와 비급여 주사, 비급여 MRI 3개만 특약으로 분류됐지만 4세대에선 모든 비급여 의료가 특약으로 분류된다.
물론 주계약(급여)와 특약(비급여)를 모두 가입하면 현재 실손보험과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질병 및 상해 치료비를 보장받을 수 있다. 연간 보장한도도 기존과 유사한 1억원(급여5000만원, 비급여5000만원)으로 책정했다.
다만 현재 입원이나 수술 시 급여 10~20%, 비급여 20% 수준인 자기부담금을 급여 20%, 비급여 30%로 높인다. 통원치료 시에도 현재는 1~2만원을 공제(의원급 1만원, 종합병원은 2만원)하지만 4세대 실손보험에선 이를 급여와 비급여로 나눠 급여는 1만원(상급·종합병원은 2만원), 비급여 3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40대 남성이 4세대 실손보험에 가입하면 주계약과 특약을 모두 가입해도 월 1만929원 가량만 내면 된다.자기부담금이 높아진 만큼, 보험금은 낮아진 것이다. 1999년에서 2008년까지의 표준화 실손보험의 경우, 40대 남성이 내야 하는 금액이 월 3만6679원인 것을 감안하면 70% 낮아진 추치다. 2009년 이후 나온 표준화 실손보험에 비해서는 50%, 2017년 이후 출시된 신(新)실손보험보다도 10% 이상 월 보험료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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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보험에 자동차보험처럼 할증·할인제를 도입한다. 도수치료나 MRI 등 비급여 영역에서 1년에 300만원 이상의 보험금을 타 간 사람은 그 다음해 보험료가 4배(300% 할증)로 뛴다. 비급여 영역으로 받은 보험금이 150만원 이상 300만원 미만인 경우, 그 다음해 3배(200% 할증)의 보험료를 내야한다. 비급여 영역에서 100만원 이상에서 150만원 미만의 보험금을 타 간 사람의 보험료 역시 2배(100% 할증)가 된다. 비급여 영역에서 100만원 미만의 보험금을 타간 사람들은 보험료가 유지된다.
다만 1년간 비급여 역영에서 보험금을 아예 신청하지 않으면 보험료가 5% 줄어든다. 금융당국은 1년간 비급여 진료를 이유로 보험금을 150만원 이상 타 간 사람이 1.8%인 반면, 아예 타 가지 않는 사람이 가입자 중 72.9%에 달하는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다만 할증과 할인은 2024년 7월에나 도입된다. 금융당국은 충분한 통계가 확보돼야 할인과 할증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만큼, 내년 하반기 4세대 실손보험이 출시 후 3년간 통계를 모은 후 시행하기로 했다.
물론, 취약계층은 비급여 보험료 할증·할인에서 제외된다. 자칫 비급여 보험료로 병원의 문턱이 높아질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국은 전체 인구 수 대비 4%에 달하는 산정특례 대상자(암질환, 심장질환, 희귀난치성질환자)나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장기요양대상자 중 1~2등급 판정자는 비급여 보험료 차등제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아울러 실손보험 재가입 주기를 기존 15년에서 5년으로 단축해 의료환경 변화 등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조절하기로 했다. 재가입주기는 보험사가 사고 이력을 이유로 계약 연장을 거절하지 못하는 만큼, 실질적으로 ‘보장내용 변경주기’라 보면 된다.
금융위는 기존 1~3세대 실손보험 가입자가 원한다면, 4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절차를 조속히 마련할 계획이다. 전환을 원한다면 심사가 필요한 경우만 일부 두고, 그 외엔 모두 무심사로 전환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당국은 다음달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안의 규정변경을 예고하고 내년 4월께 표준약관 등 세부내역을 담은 시행세칙에 대한 개정안도 변경예고할 방침이다. 이어 내년 7월 1일 4세대 실손보험을 내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