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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전성시대④] 골목길 덮는 근심 "명동거리 같아요"

이윤정 기자I 2013.10.25 16:35:43

- 시름앓는 길…골목길이 사라진다
이화동·삼청동 방문객 급증
주말엔 인산인해 이루기도
낙서·쓰레기로 몸살

한때 서울 속 대표 골목길로 꼽혔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골목길 모습. 늦은 저녁까지 인파로 북적여 고즈넉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사진=이윤정 기자).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골목길. 한때 옛것을 간직한 조용한 동네로 인식되던 이곳은 주말이면 늘어난 관람객 탓에 북새통을 이룬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기대하고 방문했다면 발 디딜 틈 없는 풍경에 실망하기 십상. 친구와 커피 한잔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회사원 이모(34) 씨는 “천천히 구경을 하고 싶어도 사람들에 떠밀려 한곳에 머무르기가 쉽지 않다”며 “골목이 아니라 명동거리 같다”고 말했다.

삼청동길과 화개길 주변의 유동인구는 평일에는 1만여명, 주말에는 3만여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토요일과 일요일에 방문객이 몰리다 보니 주말의 삼청동은 소박한 골목길이라기보다 시내 한복판을 연상시킨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소문이 퍼지자 커피숍과 패션매장, 화장품가게 등 수많은 상점도 들어섰다. 삼청동 내에 위치한 패션관련 매장만 40여곳. 삼청동으로 향하는 북촌로5가 길에는 솔트앤초콜릿과 홈스테드 등 커피숍을 비롯해 TNGT와 에뛰드 하우스 등 상업시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도 상황은 마찬가지. 지하철 4호선 혜화역과 동대문역 사이,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곳은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서울의 명소 중 하나가 됐다.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이화동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한 공공미술 시범사업인 ‘낙산 공공미술 프로젝트’ 지역으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전국 소외지역의 생활환경을 공공미술로 개선하는 프로젝트에 따라 60여명의 작가와 300여명의 주민들은 이화동을 조각품과 벽화가 함께하는 거리 미술관으로 탄생시켰다.

이후 2010년 9월 KBS2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에 이화동 벽화마을이 소개되면서 방문객이 급증했다. 마을에서 30년 이상 살았다는 박모(73) 씨는 “오전 9시부터 사진 찍으러 많이들 올라온다”며 “사람이 많다 보니 북적북적하고 아무래도 예전보다 시끄러워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관람객이 늘어나면서 쓰레기와 사생활 침해, 낙서 등의 문제도 생겼다. 가수 이승기가 사진을 찍으면서 유명세를 치른 ‘천사날개’ 그림은 시끄럽다는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자 작가가 직접 그림을 지우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을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순복(52) 씨는 “새로 그린 벽화에는 아예 ‘낙서금지’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자본주의의 영향’이라고 분석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내다봤다. 때문에 과거의 모습만을 고수하기보다 전통과 현대의 양면을 적절히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인위적인 규제보다 주민들 스스로 옛것을 지켜낼 수 있도록 하는 자생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전통을 지켜내려는 성숙한 시민의식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현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주민과 상인들이 함께 의견을 모아 지역의 규칙을 정하는 등 상생의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에 새로 그려진 그림에는 아예 ‘낙서금지’라는 표시를 해뒀다(사진=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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