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지금은 부재중입니다"

홍정민 기자I 2003.02.04 17:18:34
[edaily 홍정민기자] 외국계 증권사는 개별적인 코멘트를 하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주로 하우스 뷰(각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반복할 뿐이며 언론에 따로 코멘트를 하는 임원은 지점장이나 리서치헤드, 언론담당 임원 1~2명 정도로 제한돼 있습니다. 그마저 오전중이 아니면 통화가 굉장히 어렵고 오전에도 회의중인 경우가 많아 적어도 2~3번 시도해야 통화 허락을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외국계 증권사의 높은 취재 벽을 증권부 홍정민 기자가 전합니다. ◇외국계 증권사 언론기피증 "산 넘어 산" 지난해 10월 중순을 전후로 대부분의 외국계 증권사 지점장이나 언론담당 간부들과 통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어느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도 들을 수 있는 "XXX is busy, please leave a message"나 "XXX is not availabe to take your call"이라는 자동응답기의 기계음 뿐이었습니다. 겨우 겨우 비서나 직원들과 통화가 되더라도 휴가를 갔다는 짧은 대답만 되풀이 됐습니다. 단체로 휴가라도 간 걸까요? 추석 연휴를 붙여서 휴가를 길게 간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우연찮게 연락한 시점에 모두 자리를 비웠을 수도 있구요. 하지만 공교롭게도 당시는 주식시장이 두달 연속 추락하며 저점을 기록한 시기였습니다. 외국계 증권사는 일반 애널리스트들과 아예 대화 자체가 금지되거나 컴플라이언스 담당부서에 연락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컴플라이언스 부서라는 곳은 주로 아시아 본부가 있는 홍콩에 위치하고 있어서 현지로 전화를 거는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허락을 받으면 다행입니다. 하루 이틀 정도 걸리는 절차를 거치더라도 확인을 받으리라는 보장이 없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종의 "신비감" 때문에 외국계 증권사의 견해가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파급효과도 훨씬 크구요. 뭔가 "있어" 보이니까 외국계 의견에 국내투자자들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아닐까요. 하지만 외국계 증권사의 견해들은 주로 기본적인 틀 하나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면서 그때 그때 약간씩 조건만 붙이는 수준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드러내지 않을 뿐이죠. 외국계 증권사들의 "언론기피증"은 외국인 투자가 비중이 36%를 넘어서고 있고 투자자들이 외국계의 견해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내 증시 상황에서 가급적 시장에 대한 발언을 삼감으로써 불필요한 혼란을 줄이려는 시도로도 이해됩니다. 하지만 배경이야 어떻든 외국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취재해서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시장에 전달하고자 하는 기자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특히 장중에 외국인과 관련한 코멘트를 받아야 하는 경우라면 더욱 곤혹스러워집니다. 이런 경향은 지난해 5월 있었던 워버그의 삼성전자 대량 매도 파문이후 더욱 심해졌습니다. 내부 입단속을 위한 각 증권사의 감시(?)가 더욱 삼엄해진 거죠. 특히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됐던 UBS워버그증권의 경우 지점장이 바뀌기 전까지 직원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통화가 불가능하다"는 형식적인 말 한마디, 급하게 수화기를 내려놓는 태도에서 불안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물론 언론에도 잘못은 있습니다. 외국계 증권사들의 코멘트가 중요한 만큼 의례적인 답변에도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거나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원래 의도와는 다소 다르게 전달되기도 하는 거죠. 매우 조심스럽게 내놓은 견해를 기자가 임의대로 편집해서 일부분만 부각시킨다면 발언한 당사자로서는 당혹스러울 겁니다. 그래서 외국계 증권사가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고 정보 제공에도 소극적일 수 있습니다. 또 이같은 이유로 취재도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얼마 전에 만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언론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너무 부각시킨다. 말한 것이 그대로 나가지 않고 재해석돼 기사화되는 경우도 있어 불쾌하다. 그러니 언론이랑 접촉을 안 하려는 거다"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외국계 증권사의 언론 기피증이 심화된 데는 언론 스스로에도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증시 전문가들이 시장에 관한 견해를 남발하며 혼선을 주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얻고자 하는 언론의 접근까지 아예 막아놓는 태도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크렘린" 같은 속성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기도 하구요. 최근 주식시장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외국계 증권사 직원들은 여전히 단체로 "부재중"인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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