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정몽준, 말 못하는 고민

문주용 기자I 2002.08.29 18:36:39
[edaily 문주용기자] 서서히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현대그룹 창업주 집안의 정몽준 의원 대선 후보 가능성도 무르익고 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기성의 후보들에 앞서는 지지율을 과시하고 있는 정 의원에 대해 산업부 문주용 기자가 이야기 합니다. 기업을 담당하는 제가 정치인 정몽준 의원을 만난 건 2001년3월이었습니다. 부친인 정주영 현대창업주의 빈소가 마련된 청운동 부친자택에서였습니다. 그는 조문오는 정·관계 인사들을 영접, 맏형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게 인사를 시키느라 바빴습니다. 그와의 첫 대면은 저의 결례로 시작해서 그의 실례로 끝났습니다. 가히 영웅의 삶을 보냈던 부친을 잃은 자식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질문을 제가 했으니까요. 당시는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간 다툼이 치열했고 끝내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뒤였습니다. 관심은 당연하게도 부친의 재산을 어떻게 나눠갖느냐는 것이었죠. 그리 넓지 않았던 빈소 한 곳에선 경영난을 겪고 있는 정몽헌 회장한테 모두 다 주기로 형제들이 합의했다는 얘기가 나오던 터였습니다. "정 의원님, 몽헌 회장에게 상속재산을 모두 주기로 형제간에 합의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초상을 치르고 있는 사람에게 상속 문제를 꺼네는 게 "잘하는 짓"은 아니죠. 외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으니 자식의 마음은 오죽했겠습니까. 정 의원은 특유의 퉁명스러움으로 반응했습니다. "누구요?" "기잡니다. 이데일리의 문주..." 큰 키의 정의원은 저를 내리보더니 불쾌하다는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더군요. "그런 거 없어요. 상중에 그런 거 상의한 것도 없고, 그런거 물어보지 마세요" 기자일 하다보면 인간으로서 못할 짓을 할 때가 더럭 있죠. 어쩔 수 없어서 그런다고 변명하지만 못할 짓을 하는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그런 편치 못한 심정인데 불쾌한 반응을 접하면 기분은 구겨질대로 구겨지죠. 못할 짓하는 기자에게 "못할 짓을 왜 하냐"며 힐난하는 것 같아서죠. 첫 인상은 나중에 좀 고쳐지긴 했습니다. 원래 좀 퉁명스러운 인물이라는 얘기를 듣고나서죠. 요즘 말 잘하는 정 의원은 예전에 말재주가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현대에 가까운 한 분은 "정 의원의 옛날 모습을 생각하면 정몽구 현대차회장의 어눌함은 집안물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정몽헌 회장이 말 잘하는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정 의원이 정계에 입문한 90년대 국민당시절, 보좌관이 써준 원고도 제대로 읽지 못할 만큼 낯가림이 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읽는 걸 제대로 할 줄 알게 되고, 나중에는 준비된 답변을 조리있게 말할 줄 알게 됐죠. 요즘에는 예민한 질문도 살짝살짝 피해가는 고단수 능력을 보유하게 있죠. 그의 과거 모습을 알고는 특유의 퉁명스러움을 조금 이해했습니다. 대선 출마를 저울질 하는 요즘 정 의원측을 보면,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기업경영경험을 전혀 과시하지 않는다는 거죠. 요새는 대통령도 경제세일즈에 나서고, 경영철학을 갖고 국가를 통치해야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다른 후보들에게 없는 기업경영 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전혀 강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 미 MIT경영대학원을 나온 뒤 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 실물 경제를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80년에는 현대중공업 상무에 올라 왕 회장아래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년뒤 82년부터 현대중공업 사장을 지냈고 87년에는 현대중공업 회장에 올랐습니다. 경영자로 활동했던 시기에 현대중공업은 현대조선중공업에서 회사이름을 바꾸고(78년), 용접기술연구소, 수조시험장, 선박해양연구소를 준공해 선박 생산기술을 끌어올리는데 노력했습니다. 80년대 중반 전세계적인 조선산업 불황이 닥쳤지만 해양개발, 플랜트등 비조선부문를 강화하면서 극복해나갔습니다. 87년에는 유조선 설계도면을 해외에 첫 수출하며 개가를 올렸고 해외로부터 시추선 모형시험 용역을 의뢰받아 수행하는 등 세계 조선시장에 현대의 이름을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74년 제1호선의 명명식을 가진후 10년만에 총 231척에 1천만톤(DWT)을 인도, 기네스북에 올랐던 것도 정 의원이 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경제인으로서의 캐리어는 90년 현대중공업 고문으로 물러나면서 끝납니다. 기업 최고경영자로서 활동한 기간은 82~90년까지 9년간이지만 현대중공업이 세계 제1의 조선소로 성장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게 사실입니다. 현대중공업의 성공스토리에서 최대 주인공은 왕 회장이겠지만 정 의원이 9년간 터득한 경영노하우 역시 매우 값진 것이었을 겁니다. 정 의원이 이를 자랑하지 못하는 건 "재벌 2세"라는 따가운 시선때문이겠죠. 적수공권으로 기업 총수자리에 오른게 아니라, 아버지를 잘 둔 행운아였다는 비판을 걱정한 탓일 겁니다. 경영노하우를 갖고 있으면서 기업 경영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그 만의 딜레마인 셈이죠. 정 의원이나 현대중공업, 현대그룹은 겉으로 서로를 피해왔습니다. 정 의원은 현대그룹 경영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고, 현대중공업이나 현대그룹 역시 정치 변수에 노출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정 의원에게 잊혀져가는 현대그룹 출신이라는 이미지가 다시 부각된 건 2000년 왕자의 난 때였습니다.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간 갈등을 풀기 위해서 동분서주했고 자신의 상속분으로 인정받았던 현대중공업을 지키기 위해 바빴던 모습이 공개가 됐습니다. 경영 뿐아니라 경제 문제에도 언급을 삼가던 정 의원이 지난 24일 재계 인사들과 골프를 쳤습니다. 전날 현대중공업 노조가 대선후보 나오는 것을 반대한다고 악다구니를 썼지만 정 의원은 현명관 삼성물산 회장, 김승연 한화회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김승정 SK글로벌 부회장과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과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정 의원은 "월드컵 성공개최를 지원해준데 대한 감사인사 차원"이라며 정치적 해석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대통령 후보로 나설지 말지를 결정하기에 앞서 재계의 뜻도 알아보고 인사도 해두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 정 의원을 보는 재계의 시선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재계 관계자는 "정 의원이 사장을 지내던 시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그와 함께 기업경영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정의원은 경제인 출신이 아니고, 때문에 재계 대표성을 얻을 입장도 아니다"고 하더군요. 재계와 가까워지려는 첫 시도였지만, 정 의원은 이미 재계와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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