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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판사는 4일 오후 8시 30분쯤 상해 혐의를 받는 이모(32)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며 “긴급체포가 위법한 이상 그에 기초한 이 사건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이 기각한 가장 큰 이유는 체포 과정이 적법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형사절차상 피의자를 체포할 때에는 ‘영장주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헌법에서는 모든 국민의 신체적 자유 보장을 위해 체포·구속 등 수색을 할 때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피의자를 체포할 때 검찰에 체포영장을 신청하고, 검찰은 판사에게 청구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다만 현행법상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있는 등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영장 없이 피의자를 긴급체포할 수 있다.
법원은 경찰이 긴급체포 요건을 갖추지 않은 상태로 위법하게 피의자를 체포했다고 봤다. 법원에 따르면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과 주민 탐문 등을 통해 이씨의 성명, 주거지, 핸드폰 번호 등을 파악한 후 이씨가 살고 있는 자택에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또 이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자 강제로 출입문을 개방하여 집으로 들어간 후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던 이씨를 체포했다.
김 판사는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신원과 주거지 및 핸드폰 번호 등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피의자가 주거지에서 잠을 자고 있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상황도 아니었다”며 “피의자를 긴급체포하고 압수수색을 실시할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찰 “신속체포 불가피”…피해자 측 “두려움 떨게 돼”
하지만 경찰은 피의자를 신속하게 검거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철도경찰은 5일 보도자료를 통해 “피의자가 불특정 다수에게 몸을 부딪치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해 제2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신속히 검거할 필요성이 있었다”며 “체포 당시 피의자가 주거지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했으나 휴대폰 벨소리만 들리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 도주 및 극단적 선택 등 우려가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사건 피해자 가족은 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기각 이유가 황당하다”며 “분노가 더욱 차오른다”고 법원을 비판했다.
김 판사는 4일 영장 기각 이유를 설명하며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라고 할 것”이라며 “범죄 혐의자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있어 예외를 둘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은 이에 대해 “최근 본 문장 중 가장 황당하다”며 “덕분에 이제 피해를 고발한 우리들은 두려움에 떨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잠도 못 자고 불안에 떠는 등 일상이 파괴됐는데 가해자의 수면권과 주거의 평온을 보장해주는 법이라니 (대단하다)”라며 “제 동생과 추가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고 토로했다.
향후 수사기관은 불구속 상태에서 이씨를 조사해 재판에 넘기거나, 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한 뒤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구속 영장을 재청구할 수 있다. 철도경찰 측은 “법원 기각 사유를 검토한 후, 향후 법과 원칙에 따라 여죄를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