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은 27일 오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해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최재원 SK부회장에 대해서도 상고를 기각, 징역 3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창사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한 SK는 그룹 전체가 침울한 분위기 속에 종일 술렁거렸다. SK는 선고 직후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데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경영 공백의 장기화로 신규사업 및 글로벌 사업 등 회장 형제가 진두지휘 해 온 분야에서 상당한 경영차질이 불가피해 질 것”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경제개혁연대는 ‘최태원 회장과 징역 3년 6월이 확정된 최재원 부회장의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내놓으라’고 논평을 냈는데, 옥중 경영이 쉽지 않은 만큼 내달 주주총회 이전에 계열사 등기이사 사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태원 회장은 SK(주),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SK C&C 등 4개 계열사, 최 부회장은 SK네트웍스, SK E&S 등 2개 회사의 이사다.
하지만 SK가 받는 충격은 당장 등기이사 사임여부가 아니다. 오너가 있어야 가능한 수조 원대 인수합병(M&A)이나 자원개발 등 10년, 20년을 내다 볼 성장동력을 만들기 어렵게 됐다는 게 걱정을 키우고 있다.
또한 자연인 최태원과 최재원 입장에서 계열사 펀드를 동원한 회삿돈 횡령은 오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도 비통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경제계 일각에선 SK에 대한 동정론과 함께, 경제살리기 기조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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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의 장기 부재가 현실화되면서 이날 SK 경영진은 김창근 의장 주재로 긴급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열고 위기대응책을 논의했다. 김 의장은 “지난 몇 년간 이어온 재판은 큰 상처를 남기고 마무리 됐지만, 지금부터 우리는 그 상처를 보듬고 새살이 돋아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면서 “SK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성장 발전해야 한다”며 분위기를 추슬렀다.
SK는 6개 위원회 중심으로 그룹을 경영하는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더 강화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그룹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손발을 동원해도 모자라는데 선장이 없는 초비상 상황이어서 막막하다”고 말했다.
SK는 2011년 브라질 원유 광구를 매각한 자금을 종잣돈을 삼아 신규 자원개발을 진행하려 했지만,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 등 중남미 에 석유 등 자원개발 시장이 열렸으나 의사결정권자가 없어 ‘그림의 떡’이다.
싱가포르와 태국 등 동남아시아를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허브로 삼으려 했던 최 회장의 구상도 어그러졌다. 최 회장은 2011년 이들 국가를 방문, 정관계 인사들을 연쇄 접촉하면서 석유저장고 건설, 통신 및 온라인 시장 진출 방안을 논의해 왔지만, 이번 선고로 어렵게 됐다.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인 페르타미나社와의 기유공장 설립 성공 이후 석유화학 공장진출을 모색했지만, 해외기업과의 경쟁입찰에서 탈락하기도 했으며, 유럽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최 회장이 심혈을 기울였던 터키에서의 사업도 11번가 진출 이외에는 답보상태다.
◇SK하이닉스도 비상등…SK에너지 글로벌 M&A도 포기
SK에너지(096770)는 지난해 11월 호주 유류 공급업체인 유나이티드 페트롤리엄(UP)지분 인수 예비입찰에 참여하려다 방침을 바꿨고, ADT캡스 인수도 중도 포기했다.
그룹 관계자는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보고를 받겠지만 서류 몇 장만으로 수 조원대 투자를 결정할 수 없다”면서 “글로벌 경쟁력은 정보력과 투자 타이밍에서 나오는데 당분간 어렵게 됐다”고 했다.
◇재계 경제살리기 찬물 우려
재계는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자는 메시지가 사라지기도 전에 정반대 기류의 판결을 맞게 돼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가 경제살리기에 매진할 수 있도록 모처럼 훈풍이 불었는데 SK 사안으로 삭풍으로 변했다”며 안타까와 했다.
사법부 판단에 대한 아쉬움과 SK에 대한 동정론도 있다. 최 회장은 1심에서 법정구속된 이후 13개월, 400일가량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재판을 받은 주요 그룹 회장 가운데 유일하게 구속돼 있으며, 수감 기간도 역대 재벌 총수 가운데 가장 길다. 범죄 액수만 수십조 원에 달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실제 복역 기간은 4개월에 불과했다. 게다가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도 실형을 확정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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