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만화가 고우영씨 타계

조선일보 기자I 2005.04.25 20:26:44

임꺽정·수호지·삼국지·초한지·대야망·일지매·십팔사략… ‘국민 만화가’ 병마에 지다
연재18년 ‘첫 패러디 작가’… 삼국지는 문화현상 암수술후에도 70년대 삭제작품 복원판 만들어

[조선일보 제공] 만화가 고우영(高羽榮) 화백이 25일 낮 12시30분 입원 중이던 경기도 일산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66세. 고인의 가족들은 “3년 전 수술을 받았던 대장암이 최근 재발해 폐와 뇌로 전이돼 치료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한국 만화계의 거대한 뿌리’ ‘국민 만화가’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고 화백처럼 세대를 가로지르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작가는 찾기 힘들다.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복 이후 부모의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피란길에 오른다. 만화계에 데뷔한 것은 중2 때인 부산 피란 시절. 형 둘이 모두 만화가여서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부산에서 만화 ‘쥐돌이’를 출간하며 데뷔했다. 고3 때는 요절한 둘째 형 고일영이 ‘추동식’이라는 예명으로 연재하던 만화 ‘짱구박사’를 ‘추동성’이라는 예명으로 이어받았고, 그때부터 인기 만화가 대열에 올랐다. 일본에서 활약하던 최배달의 스토리를 ‘대야망’이란 제목으로 처음 소개한 것도 그였다. 하지만 역시 고우영이란 이름 세 글자를 대중들의 마음에 새겨넣은 것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사극(史劇) 시리즈다. 1972년 1월 1일 일간스포츠에 ‘임꺽정’을 연재하기 시작한 그는 이후 18년 동안 ‘수호지’ ‘삼국지’ ‘초한지’ ‘서유기’ ‘열국지’ ‘일지매’ ‘십팔사략’ 등의 고전을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한국 만화계에 최초로 등장한 본격 패러디 작가라는 후세대의 별칭이 어색하지 않은 그이다. 특히 1978년 연재하기 시작한 그의 대표작 ‘고우영 삼국지’는 일본 극화와는 전혀 다른 그림체, 특유의 익살스러운 대사와 파격적인 전개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됐다. ‘쪼다’로 묘사된 유비, ‘폼나는 인물’로 그려진 관우는 그만의 참신한 해석이었다. 또 ‘수호지’에서 창조해낸 반금련의 기둥서방 ‘무대’는 좁쌀 같은 외모에 한없이 순박하고 바보스러운 캐릭터로 당시 대학가에 ‘무대 클럽’이 생길 정도였다. “상상력은 만화가의 밥”이라는 지론처럼, 그는 동양 고전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버무려,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빚어낸 것이다. 고 화백은 당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18년을 연재하면서 하루 24시간 중 평균 20시간이 작업시간이었다”면서 “꿈에서 있었던 일을 줄거리에 옮긴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회고했다. 고 화백은 만화가협회 제15, 16대 회장을 역임했고 대한민국문화예술상과 민족문학작가회의 문예인 우정상을 받았다. 2002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1970년대에 당국의 검열에 걸려 삭제당했던 부분을 되살린 복원판을 내놓는 등 ‘영원한 현역’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본지에 “내 인생과 한국만화 100년 역사를 만화로 정리하겠다”고 제안하며, 2회분의 원고를 보내왔다. 하지만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창작엔 은퇴가 없다”던 자신과의 약속은 하늘나라에서 계속 이어지게 됐다. 신문수 화백은 “고인은 ‘국민 만화가’로 불리며 우리 만화계에 큰 자취를 남긴 분”이라며 “우리 만화계에서 아까운 선배가 떠나셔서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인희씨를 비롯해 장남 고성우씨 등 3남1녀. 빈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9시. (031)901-4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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