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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리포트)어, 이 산이 아닌가?

김기성 기자I 2003.05.22 17:28:38
[edaily 김기성기자] 올들어 자동차업계에서 볼멘 소리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의 자동차산업정책이 일관성없이 왔다갔다하면서 이해관계가 정반대로 엇갈리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죠. 자동차업계의 굵직한 현안인 경유승용차 허용이나 경차규격 확대를 둘러싼 정부의 최근 행보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덩달아 자동차업체들의 일희일비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산업부 김기성기자가 자동차업계의 안타까운 현실을 되짚어봤습니다. "어? 이 산이 아닌가 보다" 한 때 유행했던 우스개 얘기를 기억하십니까. 능력없고 엉뚱한 리더를 만난 부하는 몸만 고달프고 얻는 게 없다는 풍자인데, 요즘 정부와 자동차업계의 관계가 이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정부의 자동차산업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자동차업계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습니다. 정책이 뒤바뀔 때마다 업체의 표정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구요. 그래서인지 업체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대관업무에 정신이 없습니다. 사실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 집단은 그 어느 산업보다 복잡 다단합니다. 때문에 여기저기서 항상 말이 많죠. 정부 부처만 보더라도 재경부 산자부 환경부 건교부 국세청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게다가 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시민단체들의 입김 또한 막강합니다. 강성 노조도 한축을 형성하고 있구요. 미국과 유럽연합의 통상압력은 때 만되면 제기되는 심심풀이 땅콩입니다. 그만큼 정부가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치기에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자동차업계의 뜨거운 현안인 경유승용차 허용과 경차규격 확대시기를 둘러싼 정부 정책의 혼선은 도를 지나쳐도 한참을 지나쳤습니다. 정부가 관련부처 장관들이 모두 모인 경제장관회의에서 유로-3기준의 경유승용차 국내 판매를 2005년부터 허용해 주기로 결정한 게 불과 두달전인 지난 3월입니다. 그러자 경유승용차를 유일하게 수출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를 제외하고 나머지 업체들은 '특정업체 봐주기'라며 강력 반발했습니다. 신차 개발기간을 따져 볼 때 2005년 경유승용차 내수시장을 현대·기아차에 고스란히 내줘야 한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죠. 시민단체와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환경오염문제' 등을 내걸며 여기에 가세했습니다. 그로부터 2개월 후 결과는 180도 뒤집혔습니다. 환경부가 유로-3, 유로-4 수준의 배출허용안을 포함시키지 않은 채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 2005년 경유승용차 국내판매가 다시 불투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0년 개정된 현행 승용차 배출가스 허용기준은 질소산화물(Nox) 0.02g/km, 미세먼지(PM) 0.01g/km 등으로 유럽에서 현재 적용하고 있는 유로-3(Nox 0.5g/km, PM 0.05g/km)에 비해 최고 25배나 엄격합니다. 다시말해 이를 개정하지 않으면 경유승용차의 국내 판매는 불가능한데, 정부의 당초 방침과는 달리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겁니다. 환경부의 갑작스런 방향 선회는 새정부 들어 장관이 바뀌기도 했지만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제정을 놓고 산자부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환경부는 이 특별법 제정에 대해 관계부처의 협의가 이뤄지면 경유승용차 배출허용 기준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산자부는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구요. 환경부가 연내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특별법은 오염물질 배출허용 총량을 지역별, 그리고 공장별로 정해서 규제하는 방안입니다. 이렇게 되자 자동차업체들의 표정도 역전됐습니다. 현대·기아차는 정부의 느닷없는 '뒤집기'에 비상이 걸렸고 GM대우 등은 환영의 뜻을 내비치며 표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경차규격 확대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지난 3월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경차규격을 현행 배기량 800cc에서 1000cc로 늘리고, 차의 폭도 1.5m에서 1.6m로 확대하기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마티즈'로 국내 경차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는 GM대우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내년에 출시될 '마티즈' 후속모델의 개발을 중단했다고 '으름장(?)'을 놓는 한편 현행 기준에 맞춰 개발하는데 들어간 대규모 투자비를 뽑기 위해서는 최소 5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호소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김진표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의 발언은 또다시 상황을 뒤집었습니다. 김부총리는 최근 인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토론회에 참석, "인천지역 1400여 GM대우 협력업체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유예기간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며 사실상 GM대우 의견을 수용할 뜻을 내비쳤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새로운 경차규격에 맞는 'SA(프로젝트명)'를 일찍부터 개발해온 현대·기아차가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경차 수요가 많은 유럽시장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경차규격 확대가 불가피하고 내수시장이 이를 뒷받침해 줘야 하는 데 갑작스럽게 유예기간을 늘린다는 정부의 방침을 납득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 거죠.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작년에는 '무쏘스포츠'의 특별소비세부과 논란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이지더니 올해는 두달새 자동차업체들의 미래를 좌우할 만한 굵직한 현안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습니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에 자동차업체들은 냉가슴을 앓고 있고 소비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정부의 정책상 유리한 쪽에 서있는 업체라도 웃고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 다시 정책이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으니까요. 90년대 중반 이후 인수합병(M&A)이라는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세계자동차산업의 재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 자동차산업은 지난달 17억2800만달러를 수출, 반도체 등을 제치고 수출 1위 품목에 올라섰습니다. 수출효자산업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죠. 정부가 차세대 연료전지나 하이브리드 등 미래 자동차산업을 이끌 기술개발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할 판국에 '손바닥 뒤집기식' 소신없는 정책은 한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악수입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정책이라면 눈치보지 말고 과감하게 밀고 나가고, 아니면 그 이전에 좀 더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형국입니다. 더이상 '어? 이 산이 아닌가 보다'라는 식은 곤란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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