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와 먼 공정위 조사…전경련 "방어권 보장해야"

김상윤 기자I 2022.04.25 11:00:00

공정위 피심의인 보호장치 강화방안 연구 의뢰
사전조사 단계에서 사실상 강제조사 강제 문제
법무·CP팀 검토자료도 증거자료로 활용 안돼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방식이 미국과 유럽연합(EU)에 비해 피심의인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업들의 동의를 얻는 임의조사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조사에 협조를 하지 않을 경우 고발을 당해 사실상 강제조사와 비슷한데다 미국과 EU와 달리 위원회의 통제장치가 없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기업의 법률팀까지 조사를 나서면서 자율적인 준법 경영 시스템마저 붕괴했다는 주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공정위 피심의인 보호장치 강화 방안에 대한 연구’를 의뢰한 결과 이같은 문제가 지적됐다고 25일 밝혔다.

◇“사전조사 단계에서 사실상 강제조사 무리”

홍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과 EU 경쟁당국은 우선 사전조사와-정식조사로 나눈 후, 현장조사를 포함한 정식조사에서만 조사를 강제하고 있다. 사전조사는 경쟁당국이 정식으로 조사에 나서기 전에 이뤄지는 일종의 ‘내사’를 말한다. 아직 범죄 혐의를 판단할 수준이 아닌 터라 강제조사 형식을 취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으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예비(사전)조사’ 단계에서 당사자, 관계인의 자발적인 자료제출에 의존하거나 자체적으로 자료를 수집한다. EU 경쟁위원회는 ‘단순요구에 의한 조사’에 사업자가 따라야 할 의무는 없고, 제공한 정보가 부정확하거나 그릇된 정보인 경우 과징금 성격의 금전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사전조사와 정식조사 관계없이 현장조사 등 강제조사에 나선다는 게 홍 교수의 지적이다. 홍 교수는 “공정위가 기업의 동의를 얻는 임의조사 방식을 취하긴 하지만 협조하지 않은 피심의인에게 형사처벌, 이행 강제금 등 형벌을 부과하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조사와 다름없다”면서 “사전조사의 경우에는 임의조사 방식만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 EU는 강제조사 착수 결정이 나기 전에 기업들의 이의신청 절차도 보장하고 있다. 미국은 예비조사 결과 원하는 내용이 미흡하거나 강제적인 자료요구가 필요한 경우 본조사로 전환을 한다. 이를 결정하는 사람이 담당 국장인데, 피심의인에 대한 소환명령 등 강제절차를 진행할 경우에는 ‘연방거래위원회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한다. 강제조사에 대해서는 피심인의 이의신청권이 인정돼, 조사 요청을 받은 후 20일 이내에 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EU는 피심인이 ‘집행위원회 명의’의 강제조사권 발동 결정에 대해 유럽법원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피심인은 법원 제소를 통해 집행위원회 결정의 적법성을 다툴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위원회 결정 없이 사무처장의 전결로 조사가 이뤄진다.

홍 교수는 “공정위의 의결은 다른 행정사건과 달리 법원의 제1심 기능을 대신하므로 공정위는 일반적인 행정절차보다 당사자(기업)에 대한 더욱 강화된 사건처리절차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심인 보호장치 강화 방안
◇한국만 ACP 보장 안해..CP강화 위해 필요

공정위가 사내 공정거래팀, 범무팀에서 사전 예방차원에서 작성한 자료까지 수집해 증거자료로 활용하는 것도 문제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국을 제외한 해외의 경우 변호사-의뢰인 간 의사교환 내용을 ‘변호사·의뢰인 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 ACP)’으로 보호하고 있다. 반면 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위는 기업의 CP팀, 법무팀의 내부 검토 자료를 조사해 위법 증거자료로 활용해 기업들의 불만이 거셌다.

이를테면 공정위는 CP팀, 법무팀에서는 위법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을 했는데도 무리하게 위법적인 일을 추진했기 때문에 고의성이 짙어 고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업인들은 CP팀과 법무팀은 보수적으로 판단을 해서 작성하고, 경영진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해 최종 결단을 내리기 때문에 CP팀과 법무팀의 검토자료을 바탕으로 단정적으로 `고의성`여부를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특히나 공정위가 ACP를 위반할 경우에는 기업들의 자율준법경영시스템(CP)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경련 유환익 산업본부장은 “공정위 조사 착수 자체가 해당 기업에 대한 신뢰 저하,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매출,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피심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각종 법적 장치를 보강하고, 이에 따라 명확하고 투명하게 조사를 수행하여 피심인의 예측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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