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철도시설공단이 철도와 지하철 안전관리에 소홀해 화재나 지진 같은 재난대비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1년 광명역 KTX 탈선사고와 지난해 대구역 열차 추돌사고를 겪고도 안전관리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감사원이 20일 공개한 ‘철도시설안전 및 경영관리실태’에 따르면, 수도권 지하철 압구정로데오·강남구청·공덕·서현·정부과천청사역 등 45개 역 승강장에는 규정에 맞지 않는 피난로가 설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역사 안에서 화재나 테러 등이 발생하면 승객들은 쉽게 대피할 수 없지만, 철도시설공단은 이동식 피난계단 등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공단이 지난 2012년 경부고속철도 시험구간인 충남 오송읍 산동3교 등 4개 교량에 지진대비 보강공사를 하면서 품질검사 관리를 소홀히 한 사실도 적발됐다.
시행업체는 전수 품질검사를 하도록 한 규정을 어기고 462개 지진격리받침 중 단 9개에 대해서만 검사를 했는데도, 공단은 이를 방치했다.
공단은 또 2011년 민간 건설사와 865억원 규모의 ‘수도권고속철도 제8공구 건설공사’ 계약을 맺고 공사를 추진하던 중 건설업체가 공사기간 단축을 이유로 터널 두께를 얇게 하도록 설계변경을 신청하자 전문가 검증없이 이를 수용했다.
같은 방식으로 공사한 호남고속철도 노령터널 등의 안전성을 검토한 결과 안전율이 기준치인 1보다 훨씬 낮은 0.13∼0.64로 나타나 안정성이 불확실한 상태라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업체들의 담합 정황을 알고도 그대로 입찰 절차를 진행, 담합 업체에 특혜를 제공한 사실도 발견됐다.
공단은 지난해 1월 총 9375억원 규모의 원주-강릉 간 철도건설사업을 추진하면서 4개 응찰 업체의 담합 정황을 인지하고 같은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 제소와 재입찰을 결정했다. 그러나 공단 이사장이 기존의 입찰을 계속 진행하라는 지시를 내려 담합 협의가 있는 업체들을 낙찰자로 결정했다.
철도시설공단의 ‘갑질’ 정황도 드러났다. 공단은 호남고속철도에 관련된 총 84건의 공사를 추진하면서 업체들로 하여금 공사연장에 따른 추가비용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각서 제출을 강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감사는 지난해 9~10월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상대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