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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엔화 구매력, 1970년 수준으로 후퇴…"가계부담 가중"

방성훈 기자I 2023.08.30 14:57:00

7월 실질실효환율 지수, 53년전과 유사…엔저 영향
에너지·식품 등 수입물가 상승→장바구니 물가 상승
日가계, 2022년 이후 세대당 170만원 추가 부담
"물가 오른 만큼 임금상승 동반돼야 소비·투자 늘어"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일본 엔화의 구매력이 53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오랜 기간 지속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및 금융완화 통화정책으로 엔화가치가 크게 하락한 탓이다. 이는 에너지 및 식료품 등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일본 가계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진=AFP)


30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행(BOJ)이 미국 달러화 및 유로화 등 주요 통화와 비교해 엔화의 종합 구매력을 산출하는 실질실효환율 지수가 7월 74.31을 기록했다. 이는 달러당 360엔으로 환율이 고정됐던 1970년 9월 이후 최저치인 작년 10월(73.7) 수치에 근접한 것이라고 닛케이는 설명했다. 즉 현재는 달러당 140엔대 중반에서 환율이 움직이고 있지만, 실질적인 구매력은 53년 전과 유사한 수준이란 의미다. BOJ가 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하면서 엔화가치가 하락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엔화 구매력의 하락은 수입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7월 엔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대비 하락했으나, 엔화 약세가 본격화하기 이전인 2021년 말과 비교하면 여전히 10% 높다. 대부분이 에너지 및 식료품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것으로, 이는 장바구니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일본 전국 슈퍼마켓 매장의 판매 데이터를 수집하는 닛케이 POS에 따르면 우유와 버터 가격이 1년 전보다 각각 8%, 10% 상승했다. 또 이탈리아산 파스타 가격이 전년 동기대비 28% 뛴 것을 비롯해 유럽산 수입품 가격이 대폭 올랐다.

결과적으로 가계의 재정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즈호 리스치 앤드 테크놀로지가 달러·엔 환율을 145엔 전후로 가정하고 추산한 결과, 일본 가계는 2022년 이후 세대당 총 18만 8000엔(약 170만원)을 더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정부의 전기·가스 요금 지원 효과를 걷어내면 총 부담액은 20만엔(약 181만원)을 넘어선다. 사카이 사이스케 미즈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저소득자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말했다.

수출이 늘지 않은 것도 엔화가치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미 달러화 대비 엔화가치는 코로나19 팬데믹 직전해인 2019년 대비 20엔 가량 떨어졌지만, 같은 해 수출 물량은 전년보다 3% 줄었다. 닛케이는 “수입 가격이 오르는 데 수출이 늘지 않으면 국내의 부(富)가 외국으로 유출되고, 또다시 엔저가 진행되기 쉽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엔화가 구매력을 회복하려면 임금과 물가가 동반 상승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올해 7월까지 11개월 연속 전년대비 3%대 상승률을 지속하며 BOJ의 목표치(2%)를 웃돌았지만, 실질임금은 15개월 연속 하락했다. 명목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밑돌고 있다는 뜻이다. 닛케이는 “물가가 오른 만큼 임금도 올라야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게 되고, 기업들도 투자에 더 많은 매력을 느낀다”며 “물가와 임금의 동반 상승이 엔화의 구매력을 높이고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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