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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리포트)`정정당당하라`지만..

김희석 기자I 2003.03.06 16:20:18
[edaily 김희석기자] 새 정부가 들어선지도 일주일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후 가장 큰 변화중의 하나는 정부 부서들의 가판 구독 중단입니다. 정권과 언론의 비정상적인 유착관계를 끊기위해 가판을 보지 않겠다는 의도죠. 과천청사를 출입하는 김희석 기자가 가판체크 중단이후 변화된 기자실과 공보실의 분위기를 전합니다. 기자들, 특히 오프라인 신문기자들은 기사를 마감한 후에도 바로 퇴근하지 않습니다. 미뤄뒀던 취재를 하거나 다음날 계획도 짜지만 그날 취재해서 쓴 기사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문에는 무슨기사가 났는지도 챙겨야 합니다. 혹시 `물`먹은게 없나 하면서. 과천에 있는 재경부 기자실은 물리적 거리가 있기 때문에 가판이 배달되는 시각이 시내보다 한 시간정도 늦습니다. 6시가 넘어도 재경부 기자실은 20명이상의 기자들이 대기하곤 했습니다. 미리, 회사나 시내에 있는 기자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팩스를 통해 받아보기도 했죠. 가판 체크가 없어진 지난주말 이후로는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6시 이후에 남아있는 기자들은 대여섯 정도밖에 안되며, 남아있다고 해도 다른 일을 위해서 입니다. 가판 체크이후 생활패턴이 가장 많이 달라진 경우는 각 부처의 스크랩 담당자들 입니다. 재정경제부 공보실에는 20년 이상 신문 스크랩을 전담해온 직원이 있습니다. 가판신문이 나올 때면 광화문의 동아일보 앞으로 가서 가판신문을 확인하고 상황을 보고합니다. 다음날에는 6시에 출근, 배달된 본판을 보고 `칼질`이라고 하는 기사스크랩을 합니다. 기사가 별로없는 평일에도 B4용지로 40매 정도의 분량입니다. 가판 구독이 없어진후 이 `칼잡이`는 저녁 6시에 바로 퇴근합니다. 그렇지만 아침에는 고역이죠. 신문이 배달되는 것은 아침 6시이기 때문에 아무리 빨리 출근을 한다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반면 종전처럼 8시에는 모든 조간 종합지·경제지를 훑고 스크랩을 끝내야 합니다. 20년의 베테랑답게 그는 오늘도 2시간만에 끝내더군요. 물론 "가판을 보지 못해 미리 구상하지 못한다"고 하면서요. 가판 구독이 없어졌다고 공보 담당자들은 할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금융감독위원회 공보실은 가판이 사라졌지만 인터넷을 통해 신문기사를 체크합니다. 3명의 직원이 남아서 저녁 9시반까지 신문사 사이트를 뒤집니다. 아침 스크랩 당번은 3명에서 4명으로 늘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전에 인터뷰에서 밝힌 `취임후 한 두 달 안에 청와대와 정부 부처의 신문 가판 구독을 금지하고, 정권에 불리한 보도가 나온다고 비정상적으로 협상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말은 언론에 정정당당하게 나가라는 주문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실무자들은 전혀 정정당당하지도 않고 신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해명자료를 내야할 기사가 있어도 `원칙`에 따라 바로 대응하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까지 미뤄둡니다. 만약 가판을 보고 해명자료를 돌렸을 때 걸리면 시범 케이스로 `작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관계자의 말입니다. "이전에도 우리가 가판신문을 보고 싶어서 봤습니까, 우리도 안보면 편합니다, 신문에서 뭐라고 쓰든 상관 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청와대에서 전화가 오는 거죠, 신문에 났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개혁 성공의 열쇠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시키는대로는 하지만 계속해서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거죠. 누가 시키지않아도 자동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 정비가 제대로된 개혁 아니겠습니까. `끊으라고 해서 일률적으로 끊고, 그렇지만 외면하기는 찜찜하고` 현재 가판체크 중단이후 분위기는 이렇게 요약될수 있습니다. 일부 출입처의 기자들은 `답답해서 안되겠다`며 기자실 자체비용으로라도 구독하자는 움직임도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비용을 뽑아보니 퀵서비스 비용 7만원에다 1부당 1만2000원 구독료를 감안하면, 한달 가판신문을 보는데 31만원이 든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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