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8일. 현정은 현대그룹(현대상선(011200)) 회장이 결연한 목소리로 이같이 말할 때만 해도 `오랜 숙원`이 달성될 것만 같았다. 주변에서 `승자의 저주` 가능성을 염려하긴 했지만, 현 회장의 `단꿈`이 불과 2달도 못 갈 거라곤 아무도 생각 못했다.
하지만 1조2000억원 대출에 어떤 조건이 붙어있느냐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결국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재판부도 등을 돌린 지금, 현대그룹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은 많지 않아 보인다.
◇ 채권단, 현대차그룹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7일 현대건설(000720) 채권단은 현대차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새로 지정했다. 현대그룹엔 미치지 못하지만, 현대차그룹 역시 5조1000억원이란 거액을 베팅한만큼 채권단으로서는 상당 수준의 수익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채권단 주관기관인 외환은행 관계자는 "지난 5일 부의된 현대차에 대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부여 안건이 채권단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 통과됐다"고 밝혔다.
이번 안건 통과 과정에서 특별히 반대하는 채권기관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채권단의 이날 결정은 충분히 예견돼왔다. 지난 4일 재판부가 현대그룹의 MOU 효력유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채권단으로서는 소송에 대한 부담감을 상당 부분 털어낸 상태이기 때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최성준 수석부장판사)는 현대그룹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채권단의 자료 제출 요구는 합리적인 범위 안이었고, 현대그룹은 자료 제출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의무에 소홀했다"고 기각 결정했다.
채권단은 재판부 결정이 나오자마자 현대차(005380)그룹으로 현대건설을 넘기는 일에 박차를 가했고, 추후 일정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그룹이 상황을 반전시키기는 힘든 분위기다.
◇ `사기 떨어진` 현대그룹 "소송전으로 끝까지 간다"
현대그룹 임직원들은 침울한 모습이다. `현대그룹이 인수한다고 하니까 현대건설 신입사원들이 대거 사직했다`, `현대건설 또한 쌍수를 들고 현대차그룹을 환영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사기도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한 현대그룹 직원은 "이번 인수전은 사실 자존심 싸움이었다"면서 "현대차그룹이나 언론에서 현대그룹을 `부실기업` 취급하면서 분노를 느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주변에선 `직원 입장에선 현대건설을 인수하지 못하는 게 낫지 않냐`고 묻는데 별로 동감되진 않는다"면서 "그룹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많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현대그룹은 채권단 결정과 별개로 소송전을 지속해나간다는 방침이다. 현대그룹은 이미 가처분 결정에 대한 항고를 진행키로 한 상황. 또 현대차그룹에 대한 소송 취지를 변경키로 했다.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룹측 한 관계자는 "항고를 하기로 했으니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라며 "항고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본안소송에도 대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그래도 최악은 피했다..경영권 위협 가능성 줄어
현대그룹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점. 당초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 7.7%(유상증자 후 기준)이 현대상선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범 현대가가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불참하고, 실권주를 우호세력에 배분하면서 이에 대한 리스크는 크게 감소한 상태. 현대엘리베이(017800)터 또한 스위스 쉰들러그룹의 지분 확대가 신경쓰였지만, 유상증자를 통해 최대주주 지분을 늘려 안심할 수 있게 됐다.
유상증자로 보유 현금이 두둑해졌다는 점도 기업 경영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는 각각 3264억원, 2909억원 유상증자를 끝냈거나 마무리 중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이었다"면서 "경영권을 공고히한 덕분에 추가적으로 리스크에 휘말릴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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