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전설리기자] "위기를 넘겼다" 월가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최근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면서 월가를 휘젖던 흉흉한 소문들도 가라앉고 있다.
금리가 진정세로 접어든 탓이기도 하지만 초고속 금리 상승에도 과거와는 달리 월가 금융기관들이 견딜 체력을 갖췄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융전문 사이트인 더스트리트닷컴도 11일(현지시간) 지난 주 미국 채권 시장의 움직임이 주는 메세지가 다행히도 "진정해. 모든 게 잘 될거야(Remain calm. All is well)"라고 전했다.
진정하라. 지금은 1998년이 아니다.
월가에는 최근까지 채권가격 급락으로 수많은 헤지펀드가 도산하고 월가 금융기관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지난주 채권시장 동향을 관찰한 전문가들은 "위기는 지나간 것 같다"며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리만브라더스의 수석 글로벌 채권 전략가인 잭 말비는 "지금은 1998년이 아니다.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와 같은 사례는 일어날 수 없다"며 "지난 7월의 채권가격 급락세가 지속되리란 명확한 증거가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LTCM은 지난 1998년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파산 위기까지 몰리는 바람에 운용자산의 90%를 잃으면서 주가 대폭락 등 세계 경제를 뒤흔든 헤지펀드다.
다른 채권 전문가들도 속속 말비와 같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채권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없지만 별로 걱정하는 눈치도 아니다. 다양한 파생금융상품 등 현대적인 위험관리 도구들에 대한 신뢰 때문인지는 몰라도 1987년 이래 최대의 채권가격 급락사태가 큰 혼란없이 지나갈 것으로 믿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국채 수익률은 진정세로 접어들었고 스왑스프레드나 모기지담보채권(MBS)의 스프레드도 일제히 큰 폭으로 줄었다. 스왑스프레드(고정금리와 변동금리의 차이)는 지난달 11일 36.5bp에서 지난 1일 66bp로 벌어졌다가 8일에는 다시 41bp로 거의 정상수준을 회복했다. USB파이낸셜서비스의 수석 채권투자전략가 마이클 라이언은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문제가 있다면 스왑 스프레드는 더 벌어져야 했다"고 말했다.
헤지펀드들도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헤지펀드 자문사인 반헤지어드바이저스인터내셔널이 5000여개 헤지펀드의 수익률을 가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글로벌헤지펀드의 평균 월간 수익률은 1.2%를 기록했다. 채권투자 중심의 헤지펀드는 1.2% 가량의 손해를 봤고 모기지전문 헤지펀드는 2% 가량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거시 경제의 추세에 따라 주식 채권 외환 등에 투자하는 일부 대형 매크로 헤지펀드나 선물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들이 큰 손실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외환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존헨리인터내셔널포린익스체인지펀드의 경우 5.3%의 손실을 입었고 메일캐피털은 5월말 이후 15%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런던 소재 매크로펀드인 루비콘 펀드도 지난달 7% 가량을 손해봤다.
지난 98년 롱텀캐피탈이 8월 한달동안 44%의 손실을 기록햇던 것에 비하면 최근 헤지펀드의 손실은 "새발의 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당시는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하면서 세계 채권시장에서 신용스프레드가 급격히 확대됐고 헤지펀드들은 막대한 자금을 빌려 투자(레버리지투자)를 했기 때문에 위기가 증폭됐었다.
그러나 이후 헤지펀드들은 레버리지투자를 자제했고 최근 수익률 급등에도 불구하고 크게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반헤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레버리지 비율(외부차입금/순수운용자금)이 2대1이 넘는 헤지펀드는 전체의 28%가 되지 않는다. 롱텀캐피탈의 레버리지비율은 무려 100대1에 달했다.
물론 지난달 수익률 급등으로 누군가는 큰 상처를 입었을 지도 모른다. 헤지펀드가 도산할 지도 모르고 시티그룹이나 리먼브라더스 등 금융기관들이 큰 손해를 봤을 수도 있다. 지난달 채권 수익률 급등은 갑작스러웠고 또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의 큰 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98년과 같은 대혼란은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지금의 금융시장은 대형 헤지펀드회사 하나의 파산으로 뿌리채 흔들릴 정도로 약하지 않고 당시와는 달리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단기간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FRB 동향 주시해야
그러나 마냥 안심해서는 안 될 일이다. 과거와는 다른 사례는 얼마든지 만들어 질 수 있고 결정적으로 채권시장의 위험요소가 완전히 사라져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UBS의 라이언은 "98년의 사례가 되풀이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위험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며 "12일 FRB의 공개시장위원회(FOMC) 코멘트가 또 다시 채권시장을 냉각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FRB가 디플레이션 발언으로부터 완전히 물러나거나 눈부신 경기 낙관론을 제시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애널리스트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만약 FRB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할 경우 채권 수익률은 다시 급격한 랠리를 재개하면서 헤지펀드와 금융 기관들을 절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갈 것이다.
전일 미국 국채 수익률은 FOMC에서 하반기 미국 경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우려로 비교적 큰 폭으로 올랐다. 채권 시장 참가자들은 연준리가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FOMC의 코멘트가 채권 시장에 불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