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목5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앞에서 인증사진을 남긴 오진서(36·여)씨는 4일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를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 터라 감염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할까봐 미리 투표에 나섰다. 오씨는 “투표 시 발열체크나 일회용 장갑 착용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며 “코로나 시국에 당연히 챙겨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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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사전투표는 오는 5일까지 이틀간 전국 3552개 사전투표소에서 이뤄진다. 코로나19 확진·격리자는 사전투표 2일 차인 오는 5일 방역 당국의 외출 허용 시각인 오후 5시부터 오후 6시 전까지 사전투표소에 도착하면 일반 선거인과 동선이 분리된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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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열리는 세 번째 선거라 유권자들은 사전투표소 내 방역수칙에도 적응한 모습이었다. 마스크 착용은 물론이고 투표소 내 발열 체크와 손 소독, 선거인과의 거리 유지 등 ‘투표참여 국민 행동수칙’이 제법 익숙해진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권자들은 사전투표소 입구에서 배부받은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관외선거인과 관내선거인 각각 구역에 나눠 들어갔다. 선거관리자들은 유권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까닭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어 신분증을 제출하면 가볍게 마스크를 내려달라고 요청해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사전투표 첫날인 이날 대선 투표 당일 일정이 있어서 미리 투표에 나선 유권자들이 대다수였다. 종로구 혜화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황인준(23·남)씨는 “투표사무원으로 일하게 돼 당일 투표가 어려울 것 같아서 왔다”며 “공약집을 보고 내게 도움이 될만한 공약을 한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강조했다. 양천구 목1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근처에서 미용 일을 하는 허수경(29·여)씨는 “본 투표 날에 휴무 없이 일해야 해서 오늘 근무 중 짬을 내 동료와 함께 투표하러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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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당일 투표장이 붐빌 것을 우려해 사전투표소를 미리 찾은 이들도 있었다. 성북구 성북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이상헌(47·남)씨는 “선거 당일 수요일에 투표하는 것은 사람이 너무 몰릴 것 같고, 코로나19도 걱정돼서 미리 하려고 방문했다”며 “기표소 안에 들어가서도 누구를 뽑을까 고민했지만, 한 명 골라야 하는 거니 딱 찍고 나왔다”고 말했다. 종로구 이화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를 찾은 박보형(31·여)씨도 “투표 당일에는 코로나19로 사람 몰릴까 봐 일부러 먼저 왔다”고 전했다.
서대문구 아현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 방문한 정모(32·여)씨는 “본 투표 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코로나 걱정에 미리 왔는데 빨리하니 속이 편하다”며 “(코로나19 이후) 세 번째 투표라서 익숙해진 면도 있다”고 말했다. 박모씨(48·여)씨도 “코로나 걱정에 아침 일찍 왔는데도 사람이 많다”며 “투표는 해야 하는데 지금이 가장 적을 것 같아서 왔다”고 했다. 김모(84·남)씨는 “사전투표 때는 사람이 덜 붐비니깐 방문했다”며 “코로나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양복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는데 근무시간에 짬을 내 인근 사전투표소를 찾은 직장인들이었다. 종로구 이화동 주민센터를 찾은 윤석원(27·남)씨는 “일하다 점심시간 전에 잠깐 나와서 투표를 했는데 빨리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쉬는 날 굳이 나오는 것보다 나온 김에 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포구 도화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 방문한 조모(32·여)씨는 “집에 어른이 있어서 코로나가 걸릴 만한 곳은 피하고 있는데 직장이 근처라 방문했다”고 전했다. 전모(29·남)씨도 “직장 근처라서 잠시 시간이 나서 방문했다”며 “빨리 투표를 하고 들어가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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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에서 귀화한 유권자도 국내에서 첫 투표에 참가하며 설레는 마음을 전했다. 종로구 가회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최빅토리아(35)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귀화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번이 첫 투표”라며 “회사가 이 근처라 방문했는데 주변에서 투표를 꼭 해야 하는 거라고 해서 러시아에서 귀화한지 10년차 된 친구도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신분증을 지참한 유권자는 주소에 상관없이 전국에 있는 사전투표소 어디에서나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 특성상 관외 투표자도 눈에 띄었다. 종로구 혜화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 들린 박모(22·여)씨는 “집에 가기 곤란한 상황이라 투표를 하려면 사전투표뿐이라 오게 됐다”고 했다. 서대문구 아현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 방문한 김모(24·여)씨는 “주소가 지금 사는 곳과 달라 사전 투표를 하러 왔다”며 “투표를 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웃어 보였다.
투표소 밖에서 투표를 인증하는 사진 촬영을 하는 유권자들도 있었다. 성북구 성북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양모(50·남)씨는 투표를 마치고 손등에 인증도장을 찍고, 사전투표소 안내문 앞에서 ‘인증샷’도 수차례 남겼다. 항상 사전투표만 해왔다는 양씨는 “투표는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니까 어떤 상황이어도 하려고 한다”며 “최소 자기가 내뱉은 공약을 기억하는 사람을 뽑았다”고 강조했다.
일회용 비닐장갑 폐기물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전한 유권자들도 있었다. 주부인 박주희(50·여)씨는 “코로나 이후 여러 차례 선거가 실시 됐지만, 선거 때마다 받는 비닐장갑을 보면 환경오염이 우려돼 늘 적응이 안 된다”고 말했다. 노원구에 거주하는 이옥순(79·여)씨도 “비닐장갑을 껴야 하긴 하지만 지금 저렇게 쌓인 거 보라”면서 “너무 아깝다”고 지적했다.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이모(35·남)씨도 “손 소독을 하는데 비닐장갑을 굳이 껴야 하나 싶다”며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선거 도장이나 기표소를 주기적으로 소독하는 게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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