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26th SRE][WORST]먹구름 드리운 현대·기아차 왕국

오희나 기자I 2017.11.28 12:11:00

테슬라發 자동차 패러다임 전환..체질개선 못하면 도태

[이데일리 오희나 기자] 국내 자동차 산업을 이끌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고속질주에 제동이 걸렸다. ‘테슬라發’로 촉발된 친환경 완성차 업체들이 부상하면서 전통적인 완성차 업체들이 고전하면서다. 여기에 중국 자동차업체들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잠식하면서 현대·기아차의 성장성에 물음표가 달렸다.

26회 SRE 기업별 등급수준 적정성 설문(워스트레이팅)에서 유효 응답자 158명 중 28명(17.7%)이 현대자동차(AAA)와 기아자동차(AA+) 신용등급에 이의를 제기했다.

현대·기아차는 이번 워스트레이팅에 처음 후보에 올랐지만 총 40개의 후보군중 3번째로 많은 표가 몰렸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무응답자 1표를 제외하고 모두 신용등급 하향조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만큼 현대·기아차의 미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크다는 방증이다.

◇韓·中·美 시장지배력 하락에 수익성 둔화..‘트리플A’에 경고 시그널

현대차(005380)는 국내 몇 안되는 트리플 A등급이다. 국내에 금융회사가 아닌 기업 중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보유한 곳은 현대차와 SK텔레콤, KT 단 3곳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에 경고의 시그널을 보내는 이유가 뭘까. 글로벌 자동차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체질개선에 성공하지 못하면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테슬라 등 친환경 완성차업체들이 기존 완성차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현대·기아차의 미래 성장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우려는 실적으로도 드러나고 있다. 현대차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93조649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8%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8.3% 감소한 5조1935억원을 기록했다. 2011년부터 5년 연속 수익성 하락세가 이어지며 영업이익률은 5%대에 머물렀다.

재무지표 또한 둔화되고 있다. 현대차의 올해 3월말 연결기준 순차입금은 42조6650억원이며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각각 141.4%, 39.8% 수준이다. 순차입금은 지난 2014년 28조3134억원 수준에서 급격히 늘어났다. 한전 사옥부지 매입을 결정하면서 10조원 가량 대규모 자금 부담이 발생한 탓이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규모 또한 2014년 10조999억원 수준에서 2015년 9조1519억원, 2016년 8조5523억원으로 축소됐고 같은 기간 EBITDA마진은 11.3%에서 10%, 지난해 9.1% 수준으로 하락했다. 최중기 NICE신용평가 기업평가실장은 “연평균 500만대의 자동차판매를 기준으로 EBITDA마진 8% 수준이면 현대차의 재무안정성이 유지될 수 있다”며 “하지만 영업수익성이 이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현대차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판단했다

이어 “현대차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경우 사실상 동일체 수준으로 간주되고 있는 기아차 또한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아픈 손가락’ 기아차..설움 더 깊다

기아차(000270)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더 크다. 현대차가 기아차의 경쟁력이었던 SUV까지 라인업을 확장하면서 포트폴리오가 겹치는데다 현대차그룹이 현대차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통상임금 부담까지 지게되면서 수익성이 급격하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기아차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52조7129억원, 영업이익은 2조4615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각각 6.4%, 4.6% 늘어났다. 하지만 통상임금이 반영된 올해 3분기에는 매출액은 14조1000억원으로 11.1%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4270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통상임금 반영금액은 9770억원 수준이다. 앞서 기아차 노조는 지난 2011년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사측을 상대로 통상임금 6869억원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기아차가 패소했다.

시장에서는 기아차의 재무구조를 감안하면 재무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소송 결과로 통상임금 기준이 변경되면서 인건비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고 최종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불확실성이 상당 기간 지속되는 점 등이 기아차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사드사태 이전부터 경쟁력 떨어져..이전 수준 회복 어렵다”

현대·기아차의 수익성 악화는 국내 시장에서 지배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다 중국과 미국 시장에서의 부진이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자동차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현대·기아차의 사업 경쟁력이 유지될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내수시장은 현대·기아차에 안정적인 이익기반이지만 지배력이 점차 하락하고 있다. 내수판매는 양사 모두 중국, 미국 다음으로 높다. 2016년 기준 현대차의 13.4%, 기아차의 17.7%를 차지하고 있다. 내수 승용차시장에서 양사의 합산 점유율은 60%를 상회하고 있어 여전히 높지만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70% 이상 점유율을 기록하며 준독점적인 시장지위를 누렸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 점유율 하락 속도와 폭은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시장은 수요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차종 노후화와 재고 증가로 인센티브 부담이 지속되면서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부진은 단기간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는게 업계 중론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이슈로 인해 중국 실적 둔화가 더 크게 부각되긴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사드 이전부터 현대·기아차의 상품경쟁력이 약화된 데 있다는 분석이다.

이지웅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상품성 저하와 판매 부진은 딜러 경쟁력도 약화시켜 향후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중국시장에서 로컬업체와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현대·기아차는 경쟁구도에서 뒤쳐지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사드 이슈가 해소된다해도 양사 합산 10%에 가까웠던 과거의 점유율 회복이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현대·기아차가 전후방 산업에 행사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현대·기아차의 부진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상당하다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위기를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한 SRE자문위원은 “크레딧 시장에서도 현대차 채권 등을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한 시중 은행은 현대차와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고 얘기할 정도”라고 전하기도 했다.

또다른 SRE자문위원은 “현대·기아차는 신차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낮아진 상황”이라며 “주력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국 업체들처럼 글로벌 명차 브랜드를 인수하거나 대규모 투자를 하는 등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한전부지를 매입하면서 시장에 실망을 안겼다.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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