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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선생은 1860년 함경북도생으로 러시아 선장 부부의 양자로 자라나 1878년부터 1900년까지 연 10만~12만달러(한화 약 1억5000만~1억8000만원)를 벌어들인 성공한 사업가다. 1890년대에는 한인마을에 32개 소학교를 설립했고, 1908년에는 동의회를 조직했으며 안중근 의사를 도운 것은 물론 대한의군에 무기와 숙식을 제공했다. 1919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총장에 선임됐고 전재산과 목숨을 조국 광복에 헌신한 인물이다.
최재형기념사업회는 15년 전 연해주를 방문한 기업인 4명이 이같은 사실에 감동받아 최재형장학회를 설립하며 시작됐다. 이후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로 명칭을 바꿔 고려인 및 다문화 학생들에 대한 장학사업, 연해주 최재형기념관 지원 및 교류, 학술연구 등을 지원해왔으나 후원이 줄어들며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 기금후원회는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마련됐다.
최재형기념사업회 기금후원회는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과 박종범 월드OKTA 회장이 각각 국내와 해외 회장을 맡는 공동 체제로 운영된다. 올초부터 기금을 모으기 시작해 현재까지 약 19억3000만원을 모금했다. 향후 시민모금 운동 등을 통해 30억원을 마련한다는 게 목표다. 후원회는 마련된 재원으로 기존 사업 지원과 홍보활동 등을 펼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국내 최재형기념관 및 연해주 항일투쟁사료관 건립 등에 나설 계획이다.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은 “최재형 선생은 조선 말 나라가 어려울 때 연해주에서 한인들의 대부로 활약하며 독립운동을 지휘하시다 일본군에 의해 재판없이 총살로 희생되셨다. 2011년 연해주를 방문한 독지가들이 독립운동사를 인지하고 기념사업회를 설립, 운영해왔으나 점점 후원자들이 줄어 위태한 상황이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박종범 월드OKTA 회장은 “전세계가 놀라고 있는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고, 나라 밖에서 고국을 위해 헌신한 최재형 선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데 해외 한인동포들도 적극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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