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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실제 가격보다 낮은 금액을 써서 올리거나, 없는 매물을 있는 것처럼 둔갑시키는 등 부동산 허위매물의 처벌 수위를 높이기 위해 신고를 받기 시작한 지난 한달간 전국에서 1507건이 접수됐다. 특히 이 가운데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만 전체의 약 3분의 1인 472건이 접수돼 관계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국민의힘 정동만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이 기간 전국 지자체 가운데 신고접수가 가장 많았던 곳은 부산(472건)으로 경기(351건), 서울(313건)을 앞질렀다. 부산에서도 특히 중구 초량동에 349건이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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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결과, 이는 신고 의식이 투철했던 한 시민의 ‘활약상’이었다. 부산 동구에서의 신고자는 단 4명, 이 중 A씨 한명이 초량동 부동산 총 344건을 신고했다. 동구청 관계자는 “한 시민이 한달 동안 하루 평균 10~20건씩 꾸준히 신고했다”고 설명했다.
신고는 초량동 신축아파트인 범양레우스센트럴베이, e편한세상부산항, 초량베스티움센트럴베이 등 3개 단지에 쏠린 것으로 전해졌다. 구청 관계자는 “새 아파트단지들이 붙어 있어 부동산중개업소들도 쭉 몰려 있는 곳”이라며 “같은 매물을 여러 중개업소에서 올리기도 했는데 모두 ‘허위매물’로 신고해 전체적으로 건수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러나 A씨의 신고는 220여건이 사실상 ‘혐의없음’으로 처리됐다. 이유인즉 이렇다.
A씨는 3개 아파트 단지에 나온 매물 중 층수가 정확히 명시되지 않은 매물 대부분을 ‘허위’로 신고했다. 예컨대 ‘A아파트 102동 저층, 매매가 6억원’, ‘B아파트 고층, 전세 2억5000만원’ 식의 매물이다. ‘건축물 소재지 명시 위반’이란 문제제기였다. 하지만 매매나 전월세 임차를 내놓는 의뢰인이 원치 않았을 경우 중개업소에선 층수를 ‘저중고’로 표시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구청 관계자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의뢰인이 실제로 ‘저중고’로 표기하길 원했는지, 원하지 않았는지 모두 직접 조사할 수 없었다”며 “법 위반 여부를 판명하기 어려워 ‘확인불가’로 분류됐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이 시민은 계약체결 인지 후에 지체없이 매물을 삭제하지 않았거나(66건), 아파트의 방향표시를 적시하지 않은(50건) 등의 이유로 허위매물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개업계에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충 토로
중개업계에선 황당하단 반응이다. ‘허위매물’의 기준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과도하게 신고했단 불만이 터져 나왔다.
부산 동구 초량동의 J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저중고층 표시는 집주인이 해달란 대로 해주는 것이지 우리가 임의로 하는 게 아니다”고 먼저 선을 그었다. 이어 “여러 단지 매물을 함께 취급하는데 다른 중개업소에서 매매가 완료돼도 우리가 곧바로 알 수 없어 매물을 바로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가계약금만 받았는데 ‘왜 거래 완료됐는데 매물 안 내리느냐, 왜 실거래가 안 띄우느냐’ 항의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반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일의 절차를 잘 모르는데다, 최근에 부동산값이 오르고 부동산법이 많이 손질되면서 매도·매수인 모두 민감해졌다”며 “일하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물론 중개업소 등의 허위매물 게시가 실제로 확인된 경우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실이 한국감정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부산 기장군에선 올해 5월 한 시민이 “내가 분양받은 아파트가 허락없이 전세등록돼 있다”고 신고해 조사한 결과 사실로 확인돼 중개업자가 행정지도를 받았다. 8월엔 부산 해운대구에서 “해운대 마린시티 공인중개사회의에서 거래 완료된 매물을 등록해 시세를 조작한다”는 신고가 들어와 감정원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부동산 허위매물 신고 계도기간이었던 지난 한 달 동안 접수된 1507건 중 1207건을 해당 중개플랫폼업체에 위반의심 사항에 관해 수정 또는 삭제 조치 요청을 통보했다. 9월 21일부터는 신고제도가 본격 시행돼, 공인중개사가 인터넷에 부동산 매물 등에 대한 허위·과장 광고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