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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 리포트)이 사진, 다시 한번 보시죠

조용만 기자I 2002.10.17 18:34:47
[edaily 조용만기자] 아침 신문에서 통신사 사장들 4명이 서로 악수하는 사진보셨습니까? 사진설명에는 "통신 4사 사장들이 정통부 기자실에서 열린 1조8000억원 투자확대 발표에 앞서 웃으며 손을 맞잡고 있다"고 돼 있습니다. 설명 그대로라면 얼마나 바림직한 일이겠습니까. 정통부를 출입하는 조용만 기자가 IT투자확대 방안에서 느낀 문제점에 대해 얘기합니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연말까지 1.8조원이라는 돈이 IT부문에 투자됩니다. 통신 4사가 `자발적으로` 3000억원의 IT투자펀드를 새로 만들고 1조3000억원을 설비투자에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두달 남짓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만, 제가 하려는 얘기는 앞으로의 문제보다는 IT투자확대 방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문제점에 대한 것입니다. 통신사업자들이 IT투자펀드와 설비투자에 수천, 수백억을 내놓기까지는 이상철 장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있었습니다. 이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IT쪽 분위기를 생각하면 밤에 잠을 설칠 때가 많다며 IT투자 확대에 대한 소신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 장관은 루슨트테크놀로지 등 세계적인 통신업체가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IT투자에 소홀할 경우 국내 이동통신 업체들이 내년부터 당장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IT투자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는데 주력해 왔습니다. 16일 행사는 결국 이같은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정통부의 이같은 노력과 통신사들의 투자확대에 대해 여론은 처음부터 곱지 않은 시각을 보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통신사들이 IT펀드에 내놓을 돈중 상당부분이 향후 소비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갈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통신사들이나 정통부의 돈이 아니라 국민의 돈이었고, 그래서 일각에서는 "요금이나 내릴 일이지 그 돈으로 왜 정통부가 생색을 내려하느냐"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3132만명(8월말 기준)의 휴대폰 가입자가 매달 적게는 2~3만원, 많게는 수십만원씩 내는 휴대폰 요금으로 통신사들은 막대한 이익을 남겼고 정부는 이같은 상황을 감안, 연내에 휴대폰 요금을 인하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IT투자활성화를 고민하던 정통부(정확히 말하자면 이 장관일 수도 있습니다만)는 휴대폰 요금을 조금 적게 내리는 대신 통신사들의 이익금을 투자쪽으로 유도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동안 국회와 소비자단체, 언론, 심지어 정부내 다른 부처 등에서 제기된 요금인하 압력에 대해 이상철 장관이 "요금인하만이 능사가 아니다. 통신업체들의 여유자금이 IT 투자에 사용될 수 있는 여건마련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누누이 밝힌 것은 이같은 배경때문입니다. 휴대폰 이용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IT투자에 돌리겠다는 정부의 생각에 대해 옳다 그르다를 판가름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시장의 실패 가능성과 정부의 역할을 들먹이지 않아도, 현 상황에서 소비자들에게 몇천원씩을 돌려주는 것보다 그 돈으로 IT투자의 물꼬를 터 불획실성에 대비하자는 장관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발상이 적절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이것이 진행되는 과정이 엉성하거나 무모해서 결국 "쇼같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대기업들이 불안한 경기상황과 정치일정을 감안, 현금만 싸들고 있겠다는 상황에서 통신사들이 자발적으로 1.8조를 투자하겠다는 것은 결코 작은 뉴스가 아니었지만 신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장관은 밤 잠을 설치면서 IT투자 활성화 방안을 고민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는 치열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그 돈은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돈이었고 그걸 투자로 돌리기 위해서는 사업자들을 `쪼아서` 갹출을 요구하는 것 못잖게 소비자들과 여론을 설득하는 노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여론에서 "생색내기"라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정통부 관료중 누구도 앞장서서 이 문제에 대해 설득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업자들을 소집해 밀어부치는 데는 능했지만 산하 연구기관이나 관련부서에서 해외사례나 객관적인 데이타 등을 통해 "이 방향이 맞다"고 설명하는 노력은 없었습니다. 장관은 계속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원맨쇼 같았습니다. 한때 막강파워를 자랑했던 재경원 등에서도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민감한 사안이나 여론향배를 살펴야 할 제도도입시 KDI나 금융연구원 등 산하 연구기관을 통해 `바람`을 먼저 잡습니다. 해당부서에서도 나서서 필요성을 역설하고, 장·차관이 강연 등을 통해 한마디씩 거들어 설득하면서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이 그동안 보아왔던 관례입니다. 이같은 노력없이 사업자들에 대해서는 밀어부치기로 일관하고, 언론에 대해 구체적인 투자대상이나 방법도 정해지지 않은 채 숫자만 덜렁 던져주는 `막무가내`식은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내용이 빈약한 반면 포장은 좀 과했습니다. 발표장에 4개 통신사 사장을 불러모아 자율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것은 `오버`였습니다. 이번 투자확대 방안은 정통부(정확히 말하자면 이 장관일 수도 있겠습니다만)가 아이디어를 내고 KT가 중간에서 조정 내지 실무자 역할을 했습니다. 정말 IT투자가 절실한 상황이었고 통신사들이 이를 공감해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면 정통부가 배경이나 이유 등을 설명하고 실무를 담당한 KT의 책임자가 업계 분위기와 그동안의 과정, 향후 투자계획 등을 전해주면 되는 일입니다. 통신사 사장들을 다 기자실로 불러모아 `자율포장`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는 얘기죠.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만 대우사태때 `채권시장 안정기금`이란 게 있었습니다. 대우사태로 금융시장이 붕괴위기에 직면하자 27조원의 펀드가 조성돼 채권사들이기에 나섰는데, 물론 정부가 아이디어를 냈고 40개 금융기관이 돈을 냈습니다. 사정이 급해서 그랬는지, 당시 금융사 사장들이 공동 기자회견을 벌인 기억은 없고 이후에도 정부의 펀드조성에 업체 사장들이 몽땅 참석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정통부를 출입한 경력이 짧아 이 바닥 분위기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늘 신문을 보니 민간업체 사장들이 정부부처 기자실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는 것은 과거 상공부 시절에나 볼 수 있던 풍경이라고 한 기자가 썼더군요. 사장들의 공동발표는 또 다른 `쇼`였습니다. 당초 정통부에서는 16일 오전 11시30분부터 통신사 사장단이 IT투자확대 방안을 발표한다고 고지했지만 막상 16일 아침이 되자 `아직 입장조율이 안됐다더라. 어디는 사장이 참석하지 않는다더라`는 소문이 돌면서 발표자체가 연기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사장 불참업체로 지목된 SK텔레콤에서는 표문수 사장이 참석할텐데 우리에게 화살을 돌리느냐며 해명하는 해프닝도 벌였습니다. 발표는 KT 이용경 사장이 맡았고 기자들의 질문은 KT와 SKT에 집중됐습니다. 이날 발표장에서 발언비중이나 언론의 관심을 감안하면 두 명의 사장은 들러리를 선 표시가 확연했는데, 이들은 "사진찍히는 데 동참하는 것"외에 다른 역할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오늘 아침 신문에 실린 사진, 다시 한번 보시죠. 통신 4사 사장들이 서로 팔을 교차해 악수를 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평소에는 서로 못믿고 헐뜯기에 급급한 통신사들의 꼬인 관계와 팔 비틀려 돈 내놓은 모습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면 지나치게 악의적인 시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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