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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현장 덮친 '안전 포비아…"공포 때문에 더 움츠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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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묵 기자I 2025.08.29 08:19:31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②
국립한국교통대 안전공학과 함병호 교수
대·중기 안전정책 차별화 필요…대기업, 예방·인센티브
중소기업은 상시 안전 관리 기구 설립해야
기업 관리 미비과 근로자 안전 소홀 구분해야

[국립한국교통대 안전공학과 함병호 교수·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다 때려치우고 외국으로 나갈까 봐요.”

최근 통화한 한 대기업 대표의 말이다. 요새 대·중소기업을 막론하고 건설·제조업계 대표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한 명도 빠짐없이 ‘안전 포비아’에 떨고 있다. 대통령이 산업 현장 사망 사고를 두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철퇴를 내리라고 지시하자 도저히 무서워서 사업을 못 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업주가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사고는 발생할 수 있는데, 발생 즉시 회사 문을 닫을 각오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8월 7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5 국제안전보건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각종 산업 안전 및 보호 장비 등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2일 DL건설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원진 전원이 일괄 사표를 제출한 것도 최근 산업계의 ‘안전 포비아’와 연결된다. 지난 8일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의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50대 근로자가 약 6층 높이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데 따른 조치다. 앞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경영진이 사표를 내고 법적 처분을 따르는 ‘자포자기’의 양태가 횡행할 것이다. 결국, 사고 수습은 후임자가 맡게 되는데 이러면 제대로 수습이 이뤄질지 의문이다.

일을 하다 사망하는 사람 숫자가 ‘0’이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사망자가 나오는 기업은 망한다’는 식의 초강경 조치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기업을 더욱 공포에 떨게 해 실제 효과도 미미할 것이며, 무엇보다 산업 경쟁력을 저해시킬 우려가 있다. 사망자도 줄이고 기업의 활동도 보장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한 산업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산업 안전 관리 체계에 차별화를 두는 것부터 시작이다. 대기업은 처벌만 강조해서는 예방에 한계가 있으므로 자기 규율에 의한 예방 노력을 평가한 후 결과에 대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과거 산재 은폐가 횡행했을 때는 기업 단위에서 은폐를 조장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윗사람들이 안전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잘한 사고도 다 보고를 요구하고, 안전 담당 직원들의 핵심성과지표(KPI)도 그에 맞춰져 있다. 크고 작은 사고가 KPI와 연결돼 있다 보니 실무자 선에서 사고를 가리는 현상이 오히려 발생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경우 시장 원리에 따라 적극적인 예방 활동을 유인할 필요가 있다. 예방을 잘 하면 혜택을 주고 미흡하면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업종·사업장별 필수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강하게 처벌하되, 일부 규정은 현장의 어려움을 고려해 완화할 필요가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항구적인 지원체계 구축이 절실하다. 50인 미만 사업장 약 29만곳 중 중대재해를 경험하는 업체는 연 500여곳에 불과하다. 그래서 중소기업은 위험관리 활동에 관심이 적다. 안전 관련 외부 지원이 절실하지만 한 두 번의 단발성 지원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2002년부터 시작된 중소기업 안전 지원사업인 ‘클린사업장 조성사업’은 지난해까지 총 2조451억원을 투입해 21만8000개소를 지원했다. 23년이 지나서야 22여만곳을 지원했을 뿐이다. 올해 산재예방 총 예산(약 1조4000억원)이 2002년(약 2900억원) 대비 5배 정도 늘어났음에도 단발성 중소기업 안전 예산 집행 체계는 바뀐 게 거의 없는 셈이다. 이제는 예산 규모에 걸맞게, 가령 ‘중소기업위험관리지원센터’ 같은 전담 조직을 설치하여 1년 내내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종사자(근로자)의 불안전한 행동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할 때가 왔다. 지난달부터 고용노동부가 실시하는 ‘안전 일터 프로젝트’는 추락, 충돌, 끼임 등 12대 핵심 안전수칙을 정하고 이를 불시에 점검 감독하여 엄중 조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처벌 대상(사업주 혹은 경영책임자)과 행위자(종사자 혹은 근로자)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어색하다.

설비 안전조치도 중요하지만 ‘인적요인(Human Factor)’에 의한 사고 가능성도 늘 있다. 그래서 종사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 영국 맨체스터대 명예교수는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을 식별하고 대응방법을 잘 인식하고 있는 작업자들은 상대적으로 불안전한 행동 가능성이 적다”고 주장했다. 작업자들의 불안전한 행동을 제어·통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핵심과제이다.

이번에 유명을 달리 한 외국인 근로자들의 경우 제대로 현장 소통이 되지 않는 문제도 크다. 이들은 거의 4, 5차 도급업체에서 지시를 받기 때문에 제대로 된 현장 설명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원청이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위험한 산업 현장에 투입되는 수많은 외국인들에게 하도급 업체가 안전 수칙을 제대로 설명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함병호 한국교통대 안전공학과 교수
셋째, 산업재해 근절을 위한 항구적인 범정부부처 협업체계를 구축하여 운영하는 일이다. 안전관리의 범위가 ‘산업안전’의 개념에서 ‘직업안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호 대상이 종사자(직업을 가진 모든 근로자)로 확대되고, 산업안전은 고용노동부뿐 아니라 대부분의 정부 부처와 관련이 있다. 현재 정부조직법은 아직도 산업안전을 고용노동부만의 업무로 본다. 반세기 전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던 영국은 여러 부처를 모아 놓은 안전보건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한 사례가 있다.

지난 국무회의 때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직을 걸고 중대재해를 줄이겠다”고 확약했다. 하지만 중대재해를 줄이는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선의를 믿으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단기간에 중대재해가 줄지 않더라도 공포에 빠진 수규자(受規者·규칙을 지켜야하는 주체)들의 사정을 살피고, 합리적인 선에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직을 내려놓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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